“대부분의 종자업체들이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며 유기종자 생산을 외면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친환경농가에겐 유기종자나 유기묘를 사용하라고 하면 어떡하나요?”
경기 이천에서 유기농으로 채소농사를 짓고 있는 신동식씨(56·대월면)는 유기종자 구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1월 본격 시행된 ‘친환경농축산물 및 유기식품 등의 인증에 관한 세부실시 요령’에 따라 올해부터 농가가 친환경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유기종자(유기묘) 또는 무소독종자를 사용해야 한다.
이에 대해 신씨는 “법에 맞게 친환경농사를 지으려면 유기종자를 써야 하는데, 법과 현장이 완전히 따로 논다”면서 “여러곳을 다녀봤지만 공식적으로 유기종자를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현실과 맞지 않은 법 시행으로 애먼 농가만 피해를 보게 됐다”면서 “농업 관련 연구기관들도 유기종자 육성 및 공급에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농가가 알아서 구하라’고 하는 것은 정말 무책임한 처사”라고 하소연했다.
인근에서 친환경마늘을 생산하는 이승몽씨(66·호법면)도 “유기 씨마늘을 구하려고 전국에 수소문해도 찾을 수 없었다”면서 “인증절차는 까다롭게 했으면서도 정작 농가를 위한 대책은 전무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친환경농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유기종자 구입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유기종자를 생산·공급하는 업체나 국가기관이 거의 없어서다. 농촌진흥청이 유기종자 공급계획을 마련하거나 연구를 진행하고는 있지만 상추·무·참외 등 극히 일부 채소류에서만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마늘의 경우 유기 씨마늘 생산과 공급에 대한 연구는 뒤로 미뤄진 상황이다.
유기종자 확보의 어려움을 감안, 정부에서는 각 시·군 농업기술센터, 국립종자원, 종자회사, 인증사업자 중 2곳 이상에서 유기 또는 합성농약 무처리 종자를 구할 수 없음을 확인받는 증명자료를 제출하면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친환경농가들은 급한 대로 이 증명을 받아 인증기관에 제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친환경농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안정적인 유기종자 공급체계를 하루빨리 갖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씨는 “친환경농업을 장려하면서 종자 공급체계도 갖추지 않은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농업진흥기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유기종자 육성 및 공급에 나서야 하고, 유기종자 생산에 참여하는 농가를 위한 장려금을 신설해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친환경인증을 관리·감독하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담당자는 “농가의 고충을 감안해 현장에서 보다 손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보완책을 마련하는 중”이라면서 “중장기적으로는 유기종자 유통·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