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호, 출렁다리, 소원바위를 거닐며
답사기 작성일 : 2014년 8월
숲에 여름 물이 가득한 8월
가족과 함께 가볍게 거닐며 웃음을 나누기 좋은 곳 천장호로 초대한다.
자연이 고아낸 맑은 물, 천장호를 둘러싼 잔잔한 전경들은 지친 일상 속 우리의 마음에 소박한 휴식을 줄 것이다
거친 비가 엄청나게 쏟아진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햇빛이 쨍 거리고 있었는데 역시 여름이다.
숨막히게 덥거나 숨막히게 비가 쏟아지거나 쉽지 않은 계절이다.
청양읍내에서 자가용이나 택시가 아닌 농어촌버스를 타고 천장호로 향한다. 차창 밖 풍경은 의외로 재밌다. 거세게 쏟아졌다가 보슬보슬 흩뿌리기를 반복하는 리듬감 있는 소리와 비슷비슷 반복되는 풍경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하며 괜스레 감성적으로 만들어 준다.
오늘은 우중산책을 하는 거라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빗소리도, 덜컹거리는 버스도 이 자체로 만족한다.
‘천장리’에 위치한 ‘천장호’는 그 이름처럼 지대가 천장처럼 높다.
그래서인지 비구름이 머리 바로 위에 있는 듯 하다.
넓게 펼쳐진 여백과 눈 앞에서 억수로 쏟아지는 비의 조화는 처음 보는 풍경이라 그런지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
그 엄청난 빗소리에 귀는 멍해지고 푸른 칠갑산의 산세를 바라보니 이런 상황이 명상하기에는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 동안 해결할 수 없는 쓸데없는 생각들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았는지 차라리 편안해 진다.
칠갑산 휴게소 앞에 하차하여, 억센 비에 정류장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투두두둑 빗소리를 들으며 정류장에 앉아 있다 보니 바로 아래지대 하늘에는 맑고 예쁜 커다란 양구름이 뭉게뭉게 떠있다.
약이 조금 오른다. 정말 신기하다. 그냥 비가 나만 따라다니는 것 같다.
서운함도 잠시, 이미 나는 그 포근한 양구름 아래에서 푸르고 넓은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억수로 쏟아졌던 비에 세상 근심이 다 씻겨내려 간듯 하다. 나의 기쁨을 위해 잠시 시험이 들게 했던 거구나! 조금 전까지 도 닦는 심정으로 튀기는 비를 맞으며 망연자실해 있었던 것 같은데 변덕스럽기도 하다.
창을 뚫을 것 같던 비와 인사하고 기분을 청정하게 해줄 천장호 출렁다리로 향한다.
‘청양’은 푸르고 ‘양지바른 밝은 곳’이라는 뜻이라는데, 비오는 날 청양여행이라니 왠지 ‘운 좋은 날’ 같은 기분이 든다.
칠갑산 휴게소에서 우측으로 틀어 들어가니 관리안내소와 먹거리를 제공하는 매점들이 즐비해있다.
천장호를 찾은 많은 가족단위 여행객들은 나처럼 비 그친 천장호에 감탄하며 그 유명한 ‘출렁다리’를 향해서 바삐 발걸음을 옮긴다.
30여분간 하늘이 뚫린 것처럼 쏟아졌던 비는 모두 잊은 듯 하다. 우리는 모두 그저 기뻤다. 자연에 대해서라면 좋은 게 좋은 거 아닐까?
우리가 뚫린 하늘을 막을 방도는 없으니 맑은 하늘인 지금이 그저 고맙다.
‘콩밭매~는 아~낙~네~야~'를 흥얼거리며 산책로를 걷는데 정말 호미를 들고 있는 콩밭 매는 아낙네 동상이 산책로 초입에 서있다.
가볍게 부르던 중 만난 슬픈 동상은 비에 젖은 호숫길 사이에서 미안한 마음과 함께 잠시 감상에 젖게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는 오손도손 정답고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며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은지 넘어져 울 법도 한데 끊임없이 달린다.
괜스레 걱정되어 아프지 않냐고 아이에게 물으니
"안죽어요. 괜찮아!"라며 아이 아빠가 대신 의연하게 대답한다.
콩밭매는 아낙네상을 지나 호수를 향해 걷다 보면 세계에서 가장 큰 고추와 구기자가 있다는 출렁다리가 시선을 압도한다. ‘1박 2일’ 촬영지로 더 유명해진 만큼 다리 입구에는 그에 대한 소개가 있다.
다리로 향하는 입구에는 청양을 상징하는 구기자와 청양고추 캐릭터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반긴다.
출렁다리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안내판을 읽어본다.
천장호 출렁다리는 207m로 동양에서는 두번째로 길고,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긴 출렁다리라고 한다.
좌우로 30cm 내외로 출렁거린다니 조금 무섭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출렁다리 위로 한걸음 내딛는다.
앞에서 관람을 마친 아이들은 출렁다리에서도 여전히 본능적으로 뛰어다닌다.
아아, 너무 무섭다.
밑에만 보고 걸으니 반대편에서 오시는 어르신이 “눈 한쪽 감고 걸어봐”라며 농담을 건네신다.
어른들도 가끔 흔들리는 무서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리를 벗어나기 위해 질주하곤 한다.
나는 어릴 적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아래에 물이 있으면 다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 아이들도 그런걸까?
좋아진 날씨에 움추렸던 마음을 펴고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손자, 손녀 다들 방글방글 기분이 좋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비가와도 기쁘고 무서워도 기쁘고 그저 기쁜 것 같다. 모두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간다.
비 온 직후여서 인지 선명한 파란 하늘, 하얀 구름에 호숫물은 갈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독특한 색감을 보이며 녹음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준다.
출렁다리에서 보이는 그 탁 트인 풍경은
냉동실에 잠시 넣어 두었던 사이다를 막 따서 마시는 것과 같은 짜릿한 청량감을 안겨준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왼쪽으로 연결되는 칠갑산 등산로가 있다.
칠갑산 등산코스는 총 7개가 있는데, 그 중 천장호를 통한 코스가 인기가 많다고 한다.
아무래도 천장호의 멋진 장관을 감상하며 오를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등산로 초입에는 친절하게도 진드기 기피제가 여행자를 위해 비치되어 있다.
비가 온 뒤라 그런지 곁에 있는 나무와 풀들이 더욱 깨끗해 보인다.
오르는 도중, 재빨리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어서 보았더니 귀여운 다람쥐가 식사를 시작하고 있다.
이 구역의 귀염둥이는 바로 너로구나!
냠냠 잘도 먹는다. 오르느라 조금 지쳐가던 내게 귀여운 다람쥐가 힘을 북돋아 준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전망데크에 도착하니, 땀방울과 함께 보는 호수가 장관이다.
끈적이는 여름 임에도 시원한 산바람과 멋진 풍경 때문인지 불쾌함따윈 없다.
출렁다리 위의 조그마한 사람들이 긴장하며 건너는 모습이 참 아기자기하게 귀여워 보인다.
등산로 초입에는 바로 커다란 호랑이와 용이 숲에서 튀어나오다 멈춘 듯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둘은 칠갑산을 수호한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무섭다기 보다 든든하다.
초등학교 때, 운동장에 있던 동상들이 자정이 되면 살아 움직인다는 전설이 있었는데 이 둘도 몰래 깨어나 꽁냥꽁냥 헤엄치며 신나게 놀 것만 같다.
용과 호랑이를 지나 호숫가를 따라 계속 걸으면 소원바위와 마주하게 된다.
간절히 바라며 어루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이 소원바위에는 이미 많은 이들의 염원이 간직되어 있다.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종이와 펜을 집어 정성껏 한 줄 적고,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한번 더 빌어본다.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진다.
가족의 건강, 시험합격, 연인과의 사랑 그리고 전쟁이 멈추길 바라는 그들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져 편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길 바란다.
산책로 곳곳에서는 기념촬영이 한창이다.
자녀들은 사춘기가 지나면서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가지도 외식을 하지도 않게 된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될 지금의 아이들에게 유년시절, 엄마 아빠로부터 자연을 벗 삼아 삶의 여유를 배웠던 이 시간은 작지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주리라.
가족들이 둘러 앉아 사진을 보며 하게 될 회상은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 수 있는 시간으로 다가가게 될 것이다.
추억을 담고 있는 가족들을 보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조만간 가족들과 다시 이곳을 찾아 함께 추억을 만들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