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철환 전남 해남군수(맨 왼쪽)가 백수피해로 초토화된 해남군 북일면 내동리 일대 논에서 벼의 피해 정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안은 쭉정이로 변한 벼. 해남=임현우 기자
3일 오후 전남 고흥군 동강면 오월리 들녘. 이백형씨(67)는 두차례의 거센 태풍으로 벼 이삭과 잎이 하얗게 말라버린 논을 보고 한숨지었다. 무농약으로 재배한 8,910㎡(2,700평)의 벼 대부분이 태풍 피해를 입었다는 이씨는 “10월20일경 수확할 예정이었는데 30%나 건질 수 있을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태풍이 없었던 예년의 경우 40㎏들이 조곡 140여가마를 수확했으나 올해는 백수피해 등으로 40가마 정도밖에 거둬들이지 못할 것 같다는 설명이다.
인근 이태형씨(54)의 논은 더 심각했다. 출수 직전에 태풍을 맞아 출수와 동시에 이삭이 검게 변한 뒤 아예 여물지 않고 있었다. 흑수피해를 입은 것이다. 이재형 오수마을 이장은 “마을 전체 논 100㏊ 가운데 60% 정도가 태풍 피해를 입은 것 같다”며 “정부는 세밀한 피해조사와 함께 획기적인 지원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정출씨(해남군 북일면 내동리)는 “40년간 벼농사를 지었어도 이런 백수피해는 처음 겪어 본다”며 “자식처럼 공들여 키운 벼가 3일간 두차례 태풍으로 모두 쭉정이로 변했다”고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전남지역은 초강력 태풍이 연이어 불면서 벼알곡의 수분이 말라 백색이나 흑색으로 변해 말라죽는 백수·흑수현상이 번져 3일 현재 피해면적이 4만4,938㏊에 달하고 있다. 시·군별로는 해남군이 1만1,620㏊로 가장 많고 함평군 5,627㏊, 고흥군 4,664㏊, 나주시 3,900㏊, 신안군 3,200㏊ 등이다. 특히 해안가에 위치한 해남·장흥·강진·고흥 등지에서는 바닷물이 넘쳐 논 4,750㏊에서 염해까지 발생했다.
전남도 관계자는 “백수·흑수현상이 나타나거나 염해를 입은 논 면적이 4만9,688㏊로 전체 식부면적 17만2,100㏊ 가운데 29%를 차지하고 있다”며 “앞으로 9월 날씨가 최대 관건이겠지만 생산량 감소는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전북지역도 마찬가지다. 전북도에 따르면 5일 오전 7시 현재 도내 전체 벼 재배면적 13만351㏊ 가운데 4만1,545㏊에서 백수피해가 나타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농가들의 피해 접수가 이어지고 있어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모내기를 늦게 한 이모작 지역과 간척지를 중심으로 백수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7일 정부의 1차 피해조사 결과가 집계되면 전국의 백수피해 면적은 10만㏊를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벼 재배면적 18㏊ 가운데 9㏊에서 백수피해를 입었다는 박용운씨(63·김제시 진봉면 고사리)는 “보리를 수확한 뒤 6월20~30일에 모내기를 한 농가 대부분은 이번 태풍으로 백수피해를 입었다”며 “백수피해가 발생하면 수확량이 평년작의 20~30%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숨지었다.
김상록 김제 진봉농협 전무는 “전북 서해안 이모작 지역 대부분에서 백수피해가 나타났고, 진봉지역은 올해 벼 생산량이 예년에 비해 20~30% 줄 것으로 보인다”며 “쌀값 하락에다 백수피해마저 겹쳐 농가들이 이중고를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충남지역도 전체 벼재배면적 15만5,000여㏊ 가운데 6,400여㏊의 논에서 백수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잠정집계됐다. 지역별로는 서산 3,200㏊, 태안 2,400㏊, 보령 370㏊, 당진 300㏊ 등이다.
출처: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