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우가 호주산 쇠고기에 맞서 이기려면 품질개선은 물론 사육에서부터 유통까지 위생·안전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선 축협에 소속된 공동방제단원들이 한우농장을 찾아 축사 안팎을 소독하고 있다.
쇠고기 시장 개방 첫해인 2001년 우리나라가 수입한 쇠고기 16만6273t가운데 미국산이 9만5671t으로 57.5%를 차지했고 호주산은 32.7%(5만4410t)에 그쳤다. 미국산과 호주산의 수입쇠고기 시장 점유율은 2002년에는 각각 63.8%, 26.2%였으며, 2003년(광우병 발생 직전까지)에는 67.9%, 21.8%로 그 격차가 더 크게 벌어졌다.
하지만 2003년 12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 국내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금지되자 호주산의 점유율은 2004년 62.1%로 크게 치솟았고, 미국산 수입이 재개된 2007년 이후에도 선두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올 들어서도 11월20일까지 국내에 수입된 쇠고기 22만3928t 가운데 호주산은 54.6%(12만2346t)에 달한 반면 미국산은 35.5%(7만9627t)에 머물러 있다.
호주산 쇠고기가 국내 수입쇠고기 시장에서 미국산을 제치고 선두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위생과 안전성을 앞세운 차별화 전략이 주효한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 호주축산공사 한국대표부는 2002년부터 한국시장에서 ‘호주청정우’라는 이름으로 호주산 쇠고기의 마케팅 활동에 나서고 있다.
정규성 축산유통연구소장은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 안전성 문제로 논란이 가열되는 동안 호주산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전염병 없는 곳에서 생산돼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이미지로 파고들며 확산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호주산 쇠고기가 한·호주 FTA 타결로 가격까지 더 낮아지게 되면 한우고기에 대한 수요를 얼마나 잠식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11년 작성한 보고서에서 한·호주 FTA 발효 후 관세가 철폐되는 15년차엔 국내 쇠고기 생산 감소액이 2412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지만, 전국한우협회는 호주산 쇠고기가 무관세로 들어올 경우 국내 쇠고기 피해액이 연간 4365억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우고기가 호주산 쇠고기와 맞서 이기려면 품질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위생·안전성까지 높여 차별화를 이루는 길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강조한다. 이는 맛과 품질이 우수한 한우고기라도 소비자들로부터 위생·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외면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연화 한국소비생활연구원장은 10월 aT센터에서 열린 국내 육가공산업 발전전략 세미나에서 “소비자들이 먹거리를 구입할 때 관심사항이 2000년 이전엔 미생물이나 중금속·농약 등 화학물질과 다이옥신 등이 들어있는지 여부에 머물렀다면, 최근엔 신종 미생물이나 각종 바이러스까지 관심 분야가 광범위해지고 있다”며 “축산물도 이젠 과학적인 분야인 ‘안전개념’을 넘어 심리적인 분야인 ‘안심개념’까지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한우가 호주산 쇠고기의 ‘청정우’ 이미지를 압도할 수 있도록 사육환경에서부터 도축·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걸쳐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테면 사육단계에서는 친환경축산물·동물복지·해썹(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을 받은 농가를 집중 육성하고, 도축과 유통과정에서도 더욱 까다로운 위생기준을 적용할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또한 간척지 등에 구제역·브루셀라·우결핵 등 악성 전염병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대규모 한우 전문 사육단지를 조성, 이곳에서 위생과 안전성을 높인 한우고기를 생산해 국내 시장에 공급하는 것은 물론 수출상품으로 적극 육성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서학철 전 함경남도 축산지도소장(새터민)은 “남북 경제협력 차원에서 개성공단처럼 북한의 청정지역에 대규모 한우단지를 조성하면 사료 자급에 의한 생산비를 절감할 수 있고, 호주산 쇠고기의 청정 이미지를 훨씬 압도할 수 있는 한우고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익명을 요구한 방역기관의 한 관계자는 “미국·호주 등 쇠고기 수출국가가 국내 한우 농가들의 허술한 방역 수준과 열악한 사육환경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며 “한우산업도 완전 경쟁체제에 돌입한 만큼 정부의 역할 못지않게 농가의 책임의식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