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에 따른 피해 규모와 충격 정도를 너무 안이하게 전망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세계 최대의 농축산물 수출국인 EU에 농축산물시장을 활짝 열어주게 됐는데도 예상 피해액을 농민단체의 추정치보다 훨씬 적게 잡고 있어서다.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14일 기자간담회에서 “한·EU FTA 체결에 따른 국내 농축산업의 피해 규모는 2,300억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러한 추정치는 FTA 발효 15년차를 기준으로 한 연간 농축산업의 생산 감소액”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데 FTA가 2011년에 발효될 경우 2025년 국내 농축산업 생산감소액이 FTA가 없을 때보다 2,300억원 정도 줄 것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15년차를 기준으로 삼은 것은 거의 모든 품목의 관세가 이 때쯤이면 철폐되기 때문이다.
장장관은 이 같은 추정치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피해 분석을 토대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농민단체 등이 추산하는 피해 규모는 정부 추정치를 훨씬 웃돈다. 대한양돈협회는 건국대의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한·EU FTA 양돈분야 예상 피해가 4,2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미국·칠레·EU와의 FTA로 예상되는 피해액 1조800억원 중 EU산의 수입비중(40%) 등을 감안한 것이다.
한국낙농육우협회도 김민경 건국대 교수와 박종수 충남대 교수 등의 연구용역 결과 연간 1,028억원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국내 잉여원유에 대한 수요 감소와 원유 생산량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원유 생산량은 214만t이고, 이중 13%인 28만t이 잉여원유로 추정되고 있다.
낙농육우협회 한 관계자는 “관세가 전혀 없는 무관세쿼터(TRQ·저율관세할당)를 과다하게 내줌에 따라 EU산 낙농품 대부분이 무관세로 들어오게 됐다”며 “국내 백색유시장이 점점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치즈·분유 등의 가공품시장마저 EU에게 빼앗기게 되면 한국 낙농산업은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농업계는 또 맥주보리·키위·오렌지 등의 신선농산물 수입량 역시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통상전문가는 “EU산 농축산물 수입액이 2001년 9억1,000만달러에서 2007년 18억6,700만달러로 6년 동안 9억5,700만달러(1조2,400억원)나 늘었다”며 “FTA가 없더라도 EU산 농축산물 수입 증가로 인한 피해는 (FTA에 따른) 정부의 추정치를 크게 웃돌 것”이라고 말했다.
농업계는 정부가 농축산 분야 피해 규모를 적게 잡을 경우 피해 보완 대책도 부실하게 짜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농업계는 “한·EU FTA 협상 과정과 결과를 신속히 공개, 농업계와 머리를 맞대고 피해액 등을 산출한 뒤 FTA의 최종 체결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 장장관은 “FTA 체결에 따른 직간접적인 피해는 충분히 보상하고 이와 별도로 농업의 체질을 강화할 수 있는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 하반기 중에 종합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준호·김상영 기자 jhchoi@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