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 태백시 매봉산 고랭지배추 재배농가들의 ‘젖줄’이 된 살수차가 산 아래에서 물을 싣고와 농가별로 밭 주변에 설치된 물탱크에 물을 옮겨 담고 있다.
태백에서 강릉으로 이어지는 35번 국도 삼수령 고개를 지나 매봉산 풍력발전단지 쪽으로 하늘에 닿을 듯 이어진 비탈길을 타고 오르니 마치 사막처럼 펼쳐진 드넓은 배추밭이 나타났다.
해발 1000m에 이르는 고지에 자리잡은 배추밭은 마른 흙과 돌투성이라 어디에 배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밭 곳곳에서 배추모종을 내고 모종에 물을 찍는(가뭄으로 배추모종이 있는 자리에만 물을 주는 것) 농가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 배추밭은 132㏊ 규모로 20여농가가 고랭지 배추농사를 짓고 있다. 6월 초부터 배추모종 정식을 시작해 17일 현재 90%의 정식률을 보이고 있다.
오랜 가뭄으로 사막같이 변한 이런 땅에서 배추 정식이 어떻게 가능할까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에 산 아래서 16t의 물을 싣고 살수차가 도착했다. 살수차는 곧바로 밭 주변 곳곳에 설치된 대형 물탱크에 물을 옮겨 담았다.
태백살수 소속 물차기사 엄주현씨(58)는 “매일 16t짜리 살수차 2대가 각각 6회씩 농가들의 물탱크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 아래로부터의 모종 정식용 용수지원은 태백시와 의회, 농협의 발빠른 대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배추농사 경험이 많은 김진업 태백농협 조합장은 “오랜 가뭄으로 이 지역 3개 관정 중 1개만 물이 있고, 2개는 물이 고갈돼 이 추세로 가면 배추 정식에 차질이 생기겠다고 판단해 행정기관을 찾아가 긴급 급수대책을 요청했다”면서 “태백시와 시의회의 적극적 지지와 지원으로 모종 정식 차질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4만9500㎡(1만5000평) 규모의 배추농사를 짓는 조익래씨(75)는 “행정과 농협의 가뭄에 대한 선도적인 대처와 대책이 없었다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배추 정식도 못하고 하늘만 원망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가뭄이 너무 심해 하루에 물을 두세번 주면 배추모종이 타들어가 다섯번 이상을 매일 찍어야 해 인건비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13만2000㎡(4만평)의 배추농사를 짓는 윤인규씨(70·창죽동)도 “밭이 넓다 보니 정식하는 여성 일꾼 10명, 물 주는 남자 일꾼 20명을 쓰고 있는데 지금까지 인건비만 하루에 350만원씩 4500여만원이나 나갔다”고 하소연했다.
농가들은 물이 아예 없었다면 농사 자체가 불가능했겠지만 막상 물을 받아 배추농사를 시작하고 보니 엄청난 비용에 ‘억’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더욱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배추밭에 사람의 힘으로 물을 줘서 배추를 키운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더 큰 문제는 포기마다 물을 찍어 키우는 배추가 과연 상품성이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정만 매봉산마을 영농회장(50)은 “평년 기준 3일 걸리던 정식 작업이 올 심은 후 물을 주며 해야 해서 5~6일씩 두배로 걸리는 것도 그렇지만 제대로 된 상품이 나올까 하는 걱정도 있다”면서 “기후변화로 인해 이젠 냉해·가뭄이 일상화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한 밭기반정비사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태백농협은 일손 부족과 인건비 증가 등으로 고충을 겪고 있는 농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태백시에 인력지원을 요청했고, 강원도의 인력지원 결정에 따라 500명의 필요인력을 관내 군부대에서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