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에 이어 마늘까지 가격이 폭락하면서 농촌현장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정부가 5일 마늘 수매가격을 상품 1㎏당 2300원으로 결정했지만, 주산지 농협과 농민들은 정부 정책의 실기를 꼬집으면서 추가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큰 시름에 빠져 있는 마늘과 양파 주산지를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다.
한상근 충남 태안농협 조합장(맨 오른쪽부터)과 조원상 NH농협 태안군지부장이 4일 매입장에서 마늘의 품질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충남 서산·태안 매입현장
직경 5.5~6㎝ ‘대서종’ 1㎏당 일반 상인 1000~1200원 농협 1500~1700원에 매입
농가 “인건비라도 건지려면 최소 2500원은 받아야” 답답
정부 격리대책은 이미 늦어 정작 시행 땐 물량 못 구할 듯
자체 매입에 나선 농협들도 보관 부담 등 해법 없어 고민
마늘값 폭락이란 먹구름이 충남 서산·태안지역도 뒤덮고 있다. 매입 현장마다 농민들의 한탄과 한숨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정부의 시장격리(2만3000t) 조치가 늦어지다보니 “약발이 다 떨어진 뒤 하려는 거냐”라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자체 매입에 나선 농협들도 손해가 불 보듯 뻔해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실제로 서산·태안지역의 경우 직경 5.5~6㎝인 <대서종> 마늘 1㎏이 일반 상인들에게 1000~1200원에 팔리고 있다. 그나마 농협들이 계약재배 물량을 1500~1700원에 매입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당초 계약액(2300~2350원)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4일 서산농협 마늘매입 장소인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만난 원봉희씨(76·팔봉면)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4950㎡(약 1500평)에서 생산된 마늘 가운데 5t은 농협(1㎏당 1700원)에 내고, 나머지 3.8t은 일반 상인(〃 1100원)에 넘겼다.
원씨는 “손에 쥔 돈이 생산비(1700만원)에 턱도 없이 못 미쳐 농사를 헛지었다”며 “속만 상하고 의욕이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동주씨(69·팔봉면)는 “인건비라도 건지려면 1㎏에 2500원은 받아야 하는데 상황이 이러니 답답할 뿐”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태안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태안농협 매입장에 20㎏짜리 150망을 가져왔다는 김정윤씨(83·태안읍)는 “살다가 이런 꼴은 처음 본다. 기가 막힌다”며 “밭농사하는 사람을 모두 죽일 작정이냐”고 언성을 높였다.
신관호 서산 부석농협 상무는 “가격지지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적어도 7월 상순까지 시장격리가 완료돼야 하는데 늦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미 농가 보유량의 60~70% 이상이 움직였다는 이유에서다. 시장격리의 세부 내용이 확정됐지만 수매시기가 늦어져 정작 수매할 때쯤이면 물량을 구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3960㎡(1200평)에 마늘을 심어 6.2t을 수확했다는 윤건상씨(72·태안읍)는 “내심 2000원 정도는 기대했는데 가격이 이렇게 떨어지니 농가들이 어떻게 살겠느냐”며 “정책이 뒷북만 치는 것 같아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자체 매입에 나선 농협들도 속만 타들어가고 있다. 농가들 상황을 감안해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가격을 정했지만 앞으로 보관·판매 등에 어려움이 예상돼서다.
서산농협(조합장 이상윤)은 6월28일부터 7월4일까지 1300t(산지폐기 280t 포함)을 매입했다. 5.5㎝ 이상 대(大)자는 1㎏당 1700원, 4.5㎝ 이상 5.5㎝ 미만인 중(中)자는 1000원, 3.5㎝ 이상 4.5㎝ 미만 소(小)자는 800원에 사들였다.
매입장에서 만난 김봉배 서산농협 상임이사는 “되도록 빨리 매입물량을 팔아야 하는데 사는 곳이 없고 저온창고 4개월 보관료도 1㎏당 100원에 달해 만만치 않다”며 “뚜렷한 해법이 없어 고민이 깊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태안농협(조합장 한상근)은 3일부터 12일까지 당초 계약물량 1700t보다 많은 2000t을 매입할 예정이다. 가격은 6㎝ 이상 대자는 1600원, 중·소자는 한데 섞어 1200원으로 정했다.
한상근 조합장은 “대상들이 1300원에 가져가겠다고 오는데 이 값에 팔아도 당장 6억원이 손해”라며 “앞으로 위험 부담이 커 수매량의 50% 정도는 서둘러 처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