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명한 가을 하늘, 앞마당 들마루나 뒤꼍 장독대 위 채반에 가을바람과 가을볕을 맞으며 가지런히 놓여있 는 갖가지 채소들…. 가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정겨운 시골집 정경이다. 가을이면 겨울 반찬 준비를 위해 채 소를 말렸던 우리 조상은 참 지혜로웠다.
싱싱한 채소가 제철인 양 넘쳐나는 요즘, 채소 말리기가 웬 말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말린 채소에는 생채소와는 다른 맛이 있고 그 이상의 영양이 들어 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한방에서는 추운 겨울 냉한 성질의 푸성귀를 자꾸 먹으면 결국 몸이 냉기를 가득 머금게 되어 병이 된다고도 하는데 말린 채소나 과일은 그 성질이 따뜻해지므로 그런 염려를 할 필요도 없다는 것. 생채소가 아삭거리는 식감과 신선함이 특징이라면 말린 채소는 쫄깃쫄깃한 식감과 함께 요리의 주재료는 물론 부재료로 활용해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선선한 바람과 뜨거운 볕이 채소 말리기에 좋은 때다. 김씨로부터 이맘 때 말리면 좋을 채소의 종류와 활용법을 알아봤다.
◆애호박=애호박은 말리면 단맛이 더 강해진다. 알이 지나치게 굵지 않고 푸른 것으로 골라 소금물에 살짝 데친 다음 그늘에서 말려야 색깔이 곱게 마른다. 애호박오가리는 물에 불려 꼭 짠 후 나물로 볶아도 좋지만 찌개나 볶음 등을 할 때 함께 요리해도 쫄깃한 식감이 살아나 맛있다.
◆가지=껍질이 얇고 육질이 연하면서도 색이 선명한 것을 고른다. 크지 않은 가지는 열십자로 긴 칼집을 넣어 막대나 실에 꿰어 통째로 말리고 긴 가지는 어슷하고 도톰하게 잘라 채반에 널어 공기가 잘 통하는 곳에서 말린다. 가지오가리는 물에 불려 꼭 짠 후 볶거나 조리기도 하지만 라자냐나 스파게티 요리에 활용해도 별미다.
◆무=무는 늦가을에 나오는 것이 가장 달다. 무는 굵은 나무젓가락 굵기에 6㎝ 정도 길이로 썰어 소금과 설탕을 약간 넣고 손으로 훌훌 털듯이 섞어 채반에서 말린다.
채반에 널었다가 곰팡이가 피었다는 이들이 있다. 무는 수분이 많기 때문인데 이럴 때는 번거롭더라도 실에 꿰어 빨랫줄에 널어두면 바람이 잘 통해 곰팡이가 생기지 않고 잘 마른다.
물에 불린 무말랭이는 쇠고기나 돼지고기 같은 재료와 함께 볶아도 맛있다. 무를 적당한 크기로 큼직하게 마구 썰기 한 후 겉면이 수들수들하게 말린 무오가리는 고등어나 고기 조림을 할 때 넣으면 너무 무르지 않고 살캉살캉한 무를 먹을 수 있어 좋다.
◆무청=알타리무청보다는 그리 굵지 않은 김장 무의 무청을 잘 데친 후 엮어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린다.
시들고 질긴 잎은 떼어 버리고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데친다. 데치지 않고 새끼로 꼬아 겨울 동안 겨울바람에 얼말리기도 하는데, 건조하는 동안 수분이 날아가 보관이 쉬울 뿐 아니라 비타민D가 생성되어 영양도 그만이다. 하지만 데쳐서 말린 시래기보다 약간 질기다.
물에 불린 무청은 찌개나 조림에 넣어 먹거나 양념에 조물조물 무쳐 쌀과 함께 영양밥을 해도 별미다.
◆고춧잎=고추를 따내고 무성한 고춧잎을 떼어 소금물에 데쳐서 말리거나 어린 순을 가지째 잘라 데쳐서 말린다.
청양고추 잎인지 풋고추 잎인지에 따라 매운맛이 다르므로 잘 골라서 말린다. 말린 고춧잎은 무말랭이를 무칠 때 같이 넣기도 한다. 생선 조림에 넣으면 매콤한 맛이 나면서 비린 맛을 감소시켜 준다.
◆감자·고구마=막 수확한 감자나 고구마보다는 분이 많은 저장 감자나 저장 고구마를 부드럽게 찐 후 얇게 썰어 채반에 널어 말린다. 말린 감자나 고구마는 그대로 튀겨도 좋고 찹쌀풀을 입힌 다음 튀겨 부각으로 먹어도 맛있다. 물을 충분히 부어 죽이나 수프로 먹기도 한다.
◆토란대=토란대는 억센 섬유질을 벗기고 여러 갈래로 잘라 데친 다음 말려서 보관한다. 말린 토란대는 아린 맛이 강하므로 요리하기 전 끓는 물에 삶은 후 뜨거운 물에 30분 정도 담가 쓴맛을 우려낸다.
출처: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