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시 대동면에서 30여년 카네이션농사를 지어온 김명구씨(오른쪽)가 김진욱 김해카네이션연구회장과 5월 카네이션시장 전망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화훼소비 수년째 지속 감소 김영란법 시행으로 더 위축
상당수 농가들 작목 전환 농사 포기까지…고사 위기
공판장에도 찬바람만 불어 공급량 지난해의 절반 수준 평균 경락가는 ‘반짝 상승’
중국산 등 수입량 매년 늘어
국내산 경쟁력 강화 위해선 고품질 생산·철저한 선별을 김영란법 개정 등 특단 조치도
화훼업계에서 “5월 특수는 모두 옛말”이라는 얘기가 나온 지 오래다. 수년째 화훼 소비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은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카네이션 주산지 농가들은 다른 작목 재배를 병행하는 등 자구책을 찾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고육지책으로, 얼마 남지 않은 농가들을 고사시키지 않으려면 김영란법 개정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가운데 카네이션 공급량 감소로 4월30일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화훼공판장의 경락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대폭 상승했다. 하지만 저장품 출하와 수입 꽃 반입 등 여러 변수 탓에 향후 시세를 긍정적으로 전망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카네이션농가, 이대로 가다간 고사=국내 최대 카네이션 주산지인 경남 김해시 대동면. 이 지역에선 현재 전국 카네이션 생산량의 70~80%가 나오고 있다.
이곳 농민들에게 5월은 연중 가장 큰 대목이다. 그러나 농민들의 표정엔 기대감보다 걱정이 어려 있다. 최근 몇년 동안 꽃 소비가 지속적으로 줄어든 데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지난해부터 적정 시세 형성이 안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진욱 김해카네이션연구회장(54)은 “얼마 전에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직접 나서 제자가 스승에게 꽃 한송이만 선물해도 위법이라고 밝혔는데, 무슨 특수를 누리겠냐”면서 “꽃 한송이가 어떻게 뇌물이 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김 회장에 따르면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처음 맞은 지난해 5월엔 원가에도 못 미치는 시세가 형성돼 꽃을 폐기한 농가들도 있었다. 또 상당수 농가들이 최근 2~3년 새 과수·과채·채소류 재배로 돌아서거나 아예 농사를 포기한 경우도 있다.
김 회장도 2017년부터 농장의 절반에 해당하는 면적(2975㎡·900평)에 방아를 심었다. 그런데 올해 주변에 방아를 심은 농가들이 늘면서 시세가 뚝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작목만 다르지 다른 농가들도 상황이 비슷하다”며 “화훼의 위기가 다른 작목의 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농가들은 이대로 가다간 수년 내 5월 특수 실종에서 화훼농가들의 고사 위기로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20여년 전인 1997년 외환위기 직후만 해도 이 지역 화훼농가가 800명에 달했는데, 지금은 겨우 220명 정도 남았고 이마저 수년 내 두자릿수로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30여년 카네이션농사를 지어온 김명구씨(53)는 “최근 3년간 매년 수천만원씩 빚만 쌓이고 있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김영란법에서 화훼를 제외하거나 시장에서 최저가격보장제를 시행하는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시장 분위기 냉랭…시세 형성 변수 많아=시장에도 찬바람이 불기는 마찬가지다. 4월26일 찾은 서울 양재동 aT 화훼공판장 생화매장은 성수기라고 하기엔 한산한 모습이었다. 또 이 시기 가장 수요가 많은 카네이션조차도 구비해놓은 상점이 드물었다.
배갑순 절화중도매인협회장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 농사를 포기한 농가들이 많아서인지 공급량이 지난해보다 현저히 줄었고, 소매상들의 수요도 예년만 못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aT 화훼공판장의 4월 마지막주(23~27일) 카네이션 거래량은 2만3026단으로 전년 동기(5만3420단) 대비 57%나 줄었다. 4월30일 거래량도 2만5082단으로 지난해 같은 날보다 48%(2만3087단)가량 줄었다. 이에 따라 한단(스탠다드 20송이, 스프레이 10송이)당 평균 경락가도 7020원을 기록했다. 지난해보다 2118원 오른 가격이다.
오수태 aT 화훼공판장 절화부 경매실장은 “공급물량이 절반 가까이 줄어 시세가 반짝 상승했지만, 앞으로는 저장품이 상당량 출하되고 수입 꽃도 본격적으로 시장에 풀리면 전년과 비슷한 시세가 형성되거나 그보다 더 낮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5월 특수를 겨냥해 반입될 수입 꽃 물량은 지난해(834만개)와 비슷한 수준으로 추정된다.
서울 경부선 꽃도매상가의 한 수입업자는 “이 시기 수입물량은 중국산이 80~90%를 차지하는데, 중국산은 도매가격이 국산의 절반이다 보니 소매상들의 수요가 점점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뿐만 아니라 도매가가 1만2000~1만5000원으로 다소 고가인 콜롬비아산 카네이션은 선명한 색상과 튼튼한 줄기 등 품질을 앞세워 인기를 끌고 있다.
오 경매실장은 “현 시점에서 수입 꽃과 경쟁하려면 고품질 위주의 생산과 철저한 선별이 중요하다”면서 “특히 저장성이 떨어지는 유색 품종은 장기 저장을 피하고, 속박이나 변질된 상품을 출하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