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한 ‘한·칠레 FTA 이행상황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칠레 FTA로 국내 농업 생산액은 9년(2004~2012년)에 걸쳐 1조원 감소했다. 보고서는 “과수시설 현대화사업과 같은 보완대책을 통해 나름대로 예상됐던 피해를 줄였다”고 밝혔다. 정부가 농업 분야 투융자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면 피해가 더 컸을 것이란 의미다.
부류별 생산 감소액은 과일주스와 같은 가공식품이 5310억원으로 타격이 가장 컸고, 과수·채소를 비롯한 일반농업이 2630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축산업은 돼지고기 수입이 늘면서 1920억원, 사료작물·임산물 등 기타농업은 140억원으로 분석됐다. 칠레산 농축산물 관세가 단계적으로 내려가는 점을 고려하면 10년간 누적 피해는 1조1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정부가 FTA 보완대책 수립에 참고했던 피해 예상치를 웃도는 규모다. 한·칠레 FTA 국회 비준동의를 앞둔 2003년 한양대 연구팀은 10년간 농가 조수입이 5860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농업소득이 3035억원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농경연 관계자는 “당시 추정한 농업소득 3035억원을 조수입으로 환산하면 5233억원으로 한양대 연구팀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사전 추정치가 사후 분석치보다 적은 이유는 전체 농축산물 중 특정 품목만 가지고 피해를 추산한 데다 대체 품목 피해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한양대 연구팀은 6개 신선과일과 과실가공품을 대상으로 피해를 추산했다. 특히 칠레산 포도 수입시기에 출하되는 국내산 과일의 대체성을 반영하지 않았다.
농경연 역시 피해분석 품목을 일부 과일과 축산물로 한정했다. 그나마 돼지고기·닭고기는 당시 자급률이 100%를 넘고, 칠레산 축산물이 국내산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수입되는 축산물과 경쟁한다는 이유로 피해가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이후 체결된 FTA 영향평가 역시 이런 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정부의 FTA 피해대책은 통상절차법에 따라 개별 FTA를 대상으로 피해액 산정과 영향평가,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마련된다. 이 과정에서 FTA의 직접적 영향권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품목은 논의 대상에서 배제된다.
이를테면 정부는 한ㆍ유럽연합(EU) FTA에 따른 농업 분야 피해의 94%가 축산농가에 돌아갈 것으로 보고 축산업 위주로 피해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FTA 발효 3년차 기준 일반농산물 수입 증가액이 축산물의 4.5배에 달했다. FTA 발효 전에는 수입되지 않았던 무화과ㆍ키위 등 63개 품목(HS 10단위 기준)이 한국땅을 밟았다.
보고서는 “FTA 이행이 진전될수록 동일 품목의 직접적인 소비대체효과는 물론 국내 농축산물시장 전반에 미치는 간접적인 파급영향이 확대될 수 있다”며 “불특정 다발성 간접피해는 직불제 개편이나 수입보장보험과 같은 종합적인 소득안정정치를 마련해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