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농민신문

[농촌 Zoom 人] 와인 만드는 농부 화가 안성분씨 <충북 영동> 2009년 50대 중반에 영동행 포도농사 지으며 그림 그려 지역 적응 위해 와인교육 참여 2017년 와이너리까지 열어 큰딸 부부도 돕겠다며 내려와 남편·작은딸 조만간 합류 계획 평생 서울을 떠나본 적 없었다. 학교를 마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남들처럼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문득 ‘나’로 살고 싶었다. 시골에 오두막을 지어놓고 좋아하는 그림을 실컷 그리며 ‘내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한번 떠오른 생각은 점점 강렬해졌고 결국 50대 중반을 넘긴 어느 날 저질러버렸다. 이 용감한 선택이 그녀의 인생에 작은 파도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결단코 그녀뿐 아니라 가족 모두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거대한 폭풍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충북 영동에서 포도농사를 지으며 와인을 만드는 ‘농부 화가’ 안성분씨(64)의 이야기다. 2009년 홀몸으로 ‘산 아래 오두막’으로 이사를 올 때만 해도 일주일 중 반은 영동에서 농사짓고 그림 그리고, 나머지는 서울 집에 가 있겠다고 가볍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골이 그녀를 홀린 것인지, 들꽃이 홀린 것인지 영동 산골에 홀딱 반해버린 그녀는 시골풍경을 화폭에 옮기는 데 심취해버렸다. 그리고 1년 만에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부문에서 특선으로 입상하며 화가라는 이름을 얻었다.
여기까지는 기대했던 바였다. 농사짓고 그림 그리는 농부 화가로 살고 싶어서 영동행을 감행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인생에 와인이 뛰어들었다.
“기왕 왔으니 지역사회와 사람들에게 제대로 적응하자 생각했죠. 그래서 이런저런 교육에 많이 참여했어요. 교육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고 이 지역을 이해하려고요. 와인도 그렇게 만났어요. 영동군에서 와인산업에 대한 지원을 많이 하니까 교육기회가 잦았거든요.”
그런데 뜻밖에도 재미가 있었다. 와인의 역사에서 시작한 가벼운 교육은 양조법과 소믈리에 교육을 거쳐 와이너리 경영까지 무려 4년에 걸쳐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2017년 와이너리를 열고 와인을 생산했다. 그녀가 재배하는 포도 품종인 <캠벨얼리>로 만든 것이다.
그녀가 만든 와인은 향이 화려하고 깊은 맛을 가졌다. 국내에서 생산된 대부분의 와인이 달콤한 것과 달리 그녀는 드라이(Dry)한 와인을 만들었는데, 와인 애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첫해에 만든 와인을 다 팔았죠. 비결이라고 한다면 배운 대로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다는 것? 드라이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 발효기간을 두배 가까이 늘린 것도 한몫했죠.”
하지만 갑작스러운 성공은 오히려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혼자서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다 가족과 상의했고, 결국 지난해 큰딸 부부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 생활까지 접고 영동으로 내려왔다.
“딸은 디자인과 홍보를, 사위는 와인 생산을 맡았어요. 저는 총괄관리를 하며 라벨을 담당하지요.”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던 딸이 와인 라벨 디자인에 엄마의 그림을 사용하자고 제안한 것. 그렇게 온전히 그녀와 그녀의 가족 손에 의해 완성된 와인이 바로 얼마 전 ‘2019 한국와인대상’에서 대상 격인 다이아몬드상을 받은 <비원>이다.
“저랑 큰딸·사위는 물론이고 얼마 전에는 작은딸도 소믈리에 자격증을 땄어요. 남편은 훨씬 전에 땄고요. 작은딸과 남편은 아직 서울에 있지만 조만간 합류할 계획입니다. 처음 영동에 내려올 때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 거지요.”
이 폭풍의 끝이 어디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가족 모두가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폭풍 속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이 시골 들녘에 피어나서 그녀를 홀렸던 작지만 아름다운 들꽃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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