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우스 복분자를 생산하며 위기를 극복해나가고 있는 김병선씨.
‘복분자 일번지’ 전북 고창에서 하우스 복분자를 생산하고 있는 김병선씨(59·아산면 성산리). 김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8살 때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1970년대 말에는 49만5000~66만㎡의 대규모 황토밭을 일궈 수박과 땅콩 농사를 지으며 큰 돈을 벌어 젊은 나이에 성공한 농업인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1980년대 초 중국산 농산물이 물밀듯이 수입되면서 큰 시련을 겪었다. 김씨는 “1983년 30㎏들이 한포대에 15만원에 거래되던 땅콩값이 한순간에 3만원으로 폭락해 당시 돈으로 2억5000만원의 빚을 지며 알거지 신세로 전락했다”며 참담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이후 고구마와 총각무 등을 재배하며 가까스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그는 2002년 친구의 소개로 복분자로 작목을 전환했다. 김씨는 당시 복분자가 1㎏에 9000원~1만원에 거래됐고, 3.3㎡당 2㎏ 정도를 수확할 수 있어 어떤 품목보다 안정적인 소득 창출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고품질 복분자를 생산하기 위해 2003년 지역 내에서 최초로 하우스재배를 시도했다.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노지에 비해 20% 이상 많았고, 열매가 커 소비자들이 선호하면서 그는 하우스 면적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그에게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2005년 12월 온종일 눈이 내리는 등 사상 유례없는 기록적인 폭설로 660㎡ 규모의 하우스 140동 가운데 131동이 완파돼 7억원가량의 피해를 입었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안전성이 입증된 친환경농산물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친환경농법으로 복분자를 생산하면서 오뚝이처럼 다시 한번 일어섰다. 복분자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소비자를 대상으로 복분자 수확 체험행사도 꾸준히 펼쳐 그들을 확실한 단골고객으로 만들었다.
농업인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게 그의 농사철학이다. 김씨는 “올해도 1000명 이상의 고객들이 복분자 수확 체험을 신청했지만 작황이 별로 좋지 않아 최종적으로 300명을 대상으로 체험행사를 실시했다”며 “그동안의 신뢰와 품질로 지금은 복분자 물량이 달려서 못 팔 정도로 판로와 수익구조가 안정궤도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과학영농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김씨. 그는 “땅을 살리고 지속 가능한 농업을 실천하기 위해 유기농업과 관련한 교육은 지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며 “지역별 특색에 맞는 작목을 선택하고 품질을 높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면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