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여기, 시골생활 10년 만에 ‘무언가 하나’를 이룬 부부가 있다. 천연염색과 규방공예로 개인전을 연 박정용(45)·김희진씨(44) 부부.
2~8일 부부는 서울 인사동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나란히 작품을 걸었다. 박씨는 ‘The Way’라는 주제로 천연염색 작품 20여점을, 김씨는 ‘집宇집宙’라는 테마로 자수와 조각보 작품 20여점을 선보인 것. 두사람의 전시는 전통 방식을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작품으로 관심을 모았다. 박씨는 테이프를 이용한 방염 기법을 개발해 길·산·숲 등을 표현했고, 김씨는 마을·집·텃밭 등 시골생활을 자수로 표현했다.
그런데 부부의 작품을 보고 있자니 새로운 기법보다는 다른 것들이 먼저 보였다. 푸른빛의 쪽염색 작품에선 이들이 사는 곳의 푸른 하늘이, 이야기가 담긴 자수 작품에선 이들이 사는 집과 마을이 떠올랐다.
작품 속에 숨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찾아간 강원 삼척시 노곡면 중마읍리. 부부의 공방인 ‘봄볕 내리는 날’엔 뜨거운 여름볕 속에서 박씨의 천연염색 수업이 한창이었다.
‘배우고 가르치기’. 부부가 사는 방식이자 이웃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천연염색과 규방공예에 대해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는 한편 이를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부부의 주된 일과. 김씨는 2006년부터 삼척시농업기술센터에서 농가주부들을 대상으로 조각보·자수 등 규방공예 수업을 하고 있다. 박씨도 천연염색 강좌를 여는 것은 물론 대학시절 풍물동아리에서 배운 풍물을 마을 주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2009년 농촌진흥청의 교육농장으로 지정되면서부터는 연간 1000여명을 대상으로 염색체험도 운영하고 있다.
“7개 마을에서 오랫동안 풍물을 가르치다 보니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어요. 그 덕에 마을 사무장도 맡고 반장도 4년 동안 했지요. 문화 여건이 열악한 농촌에서는 작은 재능도 쓸모가 있더라고요. 천연염색과 규방공예, 풍물은 모두 우리 전통문화라 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고요.”
‘부창부수’라고 박씨의 말에 김씨가 거든다. “바느질을 배우면서 힘든 일을 극복하시는 어르신들이 많더라고요. 규방공예 수업은 단지 기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삶도 바꿀 수 있어 보람이 크답니다.”
대구에서 직장에 다니던 부부가 삼척으로 온 것은 2004년. 도시생활에 지친 부부에게 귀촌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삼척을 택한 이유는 박씨의 부모님이 계신 고향이라 연착륙이 가능할 것 같아서였다고. 부부는 천연염색과 조각보 만드는 법을 배우러 다니며 귀촌 이후의 삶도 미리 구상했다.
꼼꼼하게 준비한 덕에 귀촌 과정은 비교적 순탄했다. 특히 두 사람이 배운 염색과 규방공예는 시골에서 유용하게 쓰였다. 옷과 소품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드는 것은 물론 교육이나 체험과도 쉽게 연계할 수 있었던 것. 다만 집을 짓느라 고생은 좀 했다. 박씨는 목수와 함께 살림집으로 한옥을 지은 데 이어 황토집의 멋을 살린 작업실과 펜션도 지었다.
전시는 끝났지만 부부는 요즘도 계속 바쁘다. 전시 내용을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 올 초 <과학과 함께하는 천연염색>(생각나눔)이라는 첫 책을 낸 박씨는 이번 전시작품의 기법을 소개하는 두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 김씨도 전시작품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간할 계획이다.
‘10년 뒤 함께 개인전을 열고 싶다’는 것이 10년 전 꿈이었다는 부부. 꿈을 이룬 지금은 이렇게 말한다. 다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이렇듯 하나하나 이뤄나가는 과정을 거친 뒤 부부가 마지막에 이루고 싶은 꿈은 뭘까?
“살아보니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농촌에서는 하고 싶은 일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 즐겁게 할 수 있어 좋습니다.” 봄볕 내리는 날 블로그 blog.naver.com/meokmul.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