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 날씨는 여전히 차갑지만 땅속에선 쉼없이 봄의 기운이 움튼다. 그 강한 봄의 기운은 흙에 뿌리 내린 나무와 꽃과 풀에 조금씩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도 어느새 나무에는 물이 함빡 차올랐다. 나무는 그 수액으로 꽃보다, 풀보다 앞서 봄을 준비한다. 수액 중에서도 으뜸은 고로쇠 수액이다. 고로쇠 수액은 생동하는 봄의 기운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어 가히 ‘하늘이 내려준 신비의 약수’ ‘천연의 웰빙 건강음료’라 할 만하다.
◆칼슘 풍부한 천연음료=‘고로쇠’라는 이름은 ‘골리수(骨利樹)’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통일신라 때 얘기다. 도선국사가 산속에서 오랜 좌선을 끝내고 일어서려는데 무릎이 펴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옆 나무에 의지했는데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바람에 쓰러졌다. 도선국사는 그때 부러진 나뭇가지에 물방울이 맺히는 것을 보고 목을 축였는데 신기하게도 그 물을 마신 후 무릎이 펴지고 몸이 좋아졌다. 그래서 도선국사는 그 나무의 이름을 뼈에 이롭다는 뜻으로 ‘골리수’라 지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고로쇠 수액은 이름이 말해주듯 뼈에 좋은 칼슘을 비롯해 칼륨·마그네슘·망간·철 등 우리 몸에 이로운 성분이 풍부해 위장병·신경통·관절염·피로해소 등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고로쇠 수액의 보다 구체적인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강하영 국립산림과학원 화학미생물과장은 “연구 결과, 고로쇠 수액이 인체에 충분한 미네랄 성분을 공급해 저칼슘 유도 골다공증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또 강과장은 “고로쇠 수액이 면역세포 활성화 효과와 아울러 면역조절물질인 사이토카인(IL-6, TNF-a) 분비를 촉진해 면역력을 높여주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간기능 회복 및 혈당강하에 관여하는 단서도 포착됐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고로쇠 수액은 흡수가 빠르고 이뇨작용이 원활해 많이 마셔도 배탈나지 않는 천연 건강음료로 각광받고 있다.
◆2월 중순~3월 초순이 최적기=고로쇠 수액은 밤 온도가 영하 3~5℃, 낮 온도가 영상 10~12℃ 정도에서 가장 많이 나온다. 이때가 일교차로 인한 나무줄기 안의 압력 변화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거나 비 오는 날은 수액을 채취하기 어렵다. 채취시기는 보통 1월 초부터 4월 초까지다. 최적기는 2월 중순부터 3월 초순 사이다.
고로쇠 수액이 많이 나는 곳은 전북 남원, 경남 하동·산청, 전남 구례 등 지리산 일대와 전남 광양, 경남 거제 등이다. 최근에는 고로쇠 수액을 찾는 이가 급증하면서 생산지가 전국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채취는 나무의 1m 정도 높이에 채취용 드릴로 지름 0.8㎝ 이내, 깊이 1.5㎝ 이내의 구멍을 뚫고 호스를 꽂아 수액을 내려받는 방식으로 한다. 수량은 나무에 따라 편차가 심한데, 보통 나무 지름이 30㎝ 이상이면 수액 채취기간 동안 약 9ℓ 정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산림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 때문에 농가들은 산림청에서 마련한 수액 채취규정을 엄격히 준수하고 있다.
김학수 한국수액협회 회장은 “나무 지름 10㎝까지는 수액 채취 구멍 1개, 20~30㎝는 2개, 30㎝ 이상은 3개를 내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수액을 얻은 뒤에는 채취 구멍 부위에 살균제를 바르고 발포제를 입혀 세균 침입을 막고 상처가 빨리 응고되도록 해 나무를 보호하고 있다.
◆음식에 사용하면 풍미 더해져=고로쇠 수액은 한번에 많은 양을 마셔도 좋고, 식수 대용으로 조금씩 수시로 마셔도 좋다. 특히 고로쇠 수액은 빠른 이뇨작용으로 노폐물 제거에 큰 도움이 되는 만큼 등산이나 운동시 땀을 흘리며 마시면 더욱 좋다. 한번에 많은 양의 수액을 마시려면 북어·쥐포·오징어·멸치 등을 곁들이면 좋다. 음식에도 그만이다. 밥 지을 때, 삼계탕이나 미역국 등을 끓일 때 고로쇠 수액을 적당량 넣으면 풍미가 더해진다.
고로쇠 수액은 보관상 주의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가급적 신선할 때 빨리 마시는 게 좋고, 냉장상태로 보관한다면 보통 열흘 정도가 적당하다고 밝히고 있다. 냉동하면 장기 보관도 가능하다. 단, 냉동 수액을 해동한 경우 곧바로 마시는 게 좋다. 또 고로쇠 수액은 시간이 지나면 뿌옇게 되고 침전물이 나타난다. 이는 고로쇠 수액 자체에 있는 섬유질과 천연 자당이 시간이 지나면서 뭉쳐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인체에는 무해하다고 전문가들은 밝히고 있다. 침전물이 생겼을 경우 얇은 천으로 한번 거른 후 마시면 된다.
이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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