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부여의 한 토마토 재배농가가 불량모종으로 인해 궤양병에 걸려 말라 죽어가는 토마토를 살펴보고 있다.
◆연간 60여건 농자재 분쟁 발생…정확한 원인 규명 어려워=불량 농자재 분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농자재 피해 구제 건수는 310여건에 달한다. 연평균 60여건이 접수되는 셈이다. 올해도 3월23일 현재까지 10건이나 접수됐다.
하지만 농가와 농자재업체 간 합의로 해결되는 소규모 분쟁과 구제절차를 몰라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농가가 많은 점을 고려하면 실제 발생한 피해 분쟁은 이보다 많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이렇듯 분쟁이 발생하는 것은 불량 농자재 피해에 대한 정확한 원인 규명을 하기 어렵다는 게 주된 원인이다. 전문가들은 “작물은 농자재 외에도 토양과 온습도에서 일조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경뿐만 아니라 농가의 재배기술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농자재에 문제가 발생해도 이를 농가가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몇해 전 수차례 상토 피해를 봤다는 경북지역의 유모씨는 “농가 개인이 제품의 하자를 입증해야 하는 부담도 적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이 때문에 농업인들은 확실한 심증을 갖고 있어도 농자재업체와 적당히 협의해 농자재를 새로 받거나 수리받든지, 소액의 보상금을 받는 선에 그치고 있다.
◆불량 농자재 분쟁조정기구 설립 필요…농가 자구 노력도 뒤따라야=전문가들은 농자재 분쟁 발생 때 신속하고 정확한 원인 규명과 함께 피해를 구제해주는 전문기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농업인들이 불량 농자재로 인한 피해 원인 규명을 의뢰하거나 피해구제를 신청할 수 있는 기관은 한국소비자원과 농촌진흥청·도농업기술원·국립종자원 정도다. 국립종자원의 종자분쟁조정협의회는 종자에만 국한돼 있다. 하지만 이들 기관의 결정사항도 강제사항이 아닌 권고에 그칠 뿐이다. 분쟁조정기구인 소비자원 등에서 피해보상 결정을 내려도 법적 강제사항이 아니어서 농자재업체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피해 원인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은데다 피해 규모도 큰 편이어서 농업인과 농자재업체 간에 견해 차이가 워낙 커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설명했다. 농업인들이 “농자재 분쟁조정기구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2년 전 살균제 피해를 입은 심창일씨(64·전남 함평군 신광면)는 “봄철 오디 열매가 조그맣게 맺힐 무렵 농약상에서 살균제를 구입해 뿌린 후 열매가 하얗게 말라 죽는 피해를 봤지만 아직까지 한푼도 보상을 못 받았다”면서 “농가는 피해입증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관계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상설 중재기구 등을 만들어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농가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자재 관련 한 전문가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나 ‘환경분쟁조정위원회’와 같은 공신력 있는 기관을 만들어 불량 농자재로 인한 분쟁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농가의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품질이 검증되거나 공신력 있는 기관이 인증한 제품을 구입해 피해발생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적극 실천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 농자재 전문가는 “값이 지나치게 싸거나 품질이 의심스러운 자재는 되도록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며 “농가에서 피해가 발생하면 힘들더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이를 주변에 알려 불량 농자재의 유통 자체를 근절시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억·이승인 기자 eok1128@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