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식량위기에 대응한 국가곡물조달시스템 구축사업이 흔들리고 있다. 사업에 깊이 관여했던 CJ가 최근 돌연 불참을 선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사업 전반에 차질이 우려된다.
국가곡물조달시스템은 정부와 aT(농수산물유통공사)가 대기업들과 공동으로 국제곡물회사를 설립, 곡물을 직접 사서 들여오기 위해 지난 연말부터 준비중인 사업이다.
CJ는 불참 사유에 대해 “검토 결과 사업성이 불투명하다고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투자비 회수 전망이 불투명하고 나중에 곡물을 들여왔을 때 기존 구매선보다 더 비싼 값에 떠맡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aT는 당혹해 하면서도 애써 의미를 축소하는 분위기다. aT 관계자는 “사실 CJ는 사업에서 별다른 역할도 없었다”며 “나머지 회사(삼성물산, 한진, STX)들과 그대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실수요자인 CJ의 불참 파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서울 성북갑)은 지난달 대정부 질문에서 “실수요자가 정확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진되는 곡물조달시스템의 실효성이 의문스럽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사업은 처음 논의단계부터 수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가장 큰 문제는 본말이 전도된 사업 추진 과정이다. 정부와 aT는 사업의 기본인 국제곡물관측모형조차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하드웨어 구축에만 골몰해 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국제곡물관측모형 도입이 시급함을 대외경제장관회의에 수차례 건의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미국 국제곡물관측기관에서 활동했던 한 전문가는 “국제 수급상황과 가격을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도 없이 국제시장에서 곡물을 사 온다는 계획은 지도 없이 세계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내용 면에서도 부실화 우려가 크다. 국제곡물시장에 정통한 또 다른 전문가는 “미국에서 곡물을 사 오려면 현지 강변엘리베이터에서 수출엘리베이터까지 운송을 담당할 선박 확보가 필수인데 답이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미국법상 자국 선사가 아니면 현지 운송을 할 수 없다. 현재 이 선박은 곡물메이저가 장악하고 있다.
방향성마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국가곡물조달시스템과 곡물비축제의 연계 여부에 대해 농림수산식품부와 aT는 기본적으로 함께 가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기획재정부는 재정 부담이 큰 곡물비축제 도입에 부정적이다.
전문가들은 “곡물비축제와 연계 여부에 따라 거래방식의 근간이 바뀌는데 방향이 정리되지 않으면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결국 CJ의 불참은 정부와 aT가 국제 곡물 수급 불안에 따른 국내 물가 불안에 서둘러 대처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혀 배부터 띄우고 보자는 무리수를 두자 사업성에 대한 우려가 표면화된 것으로 보인다.
“메이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우리가 누구보다도 절박하다. 정부 주도 사업에서 발을 빼는 부담도 크다. 하지만 비전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하겠느냐”는 CJ측의 하소연을 곱씹어 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