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업인단체들은 자유무역협정(FTA)·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같은 국제 협상에서 쌀을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 표명을 요구하고 있다. 김주흥 기자 photokim@nongmin.com
우리 쌀 관세율을 놓고 진행될 검증 협상의 의제는 쌀 하나다. 그렇지만 농산물 수출국들은 관세율 검증을 빌미로 다른 통상현안 해결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자유무역협정(FTA)·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서 쌀 관세를 더 내리라는 압박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쌀 문제는 쌀로 풀어야=2004년 우리나라의 관세화 연장 협상에는 9개국이 참여했다. 중국ㆍ미국ㆍ호주ㆍ이집트와 같은 중단립종 쌀 생산국과 더불어 태국ㆍ인도ㆍ파키스탄처럼 우리 국민이 잘 먹지 않는 장립종 쌀 생산국도 포함돼 있다. 쌀을 거의 생산하지 않는 아르헨티나ㆍ캐나다까지 협상에 참여했다. 관세화 연장을 대가로 축산물 검역 완화와 같은 현안을 해결하려는 의도였다.
1999년 일본이 제출한 관세율 검증 협상에는 4개국이 참여했는데, 이 중 쌀 생산국은 호주뿐이다. 나머지 유럽연합(EU)ㆍ아르헨티나ㆍ우루과이는 과일과 축산물 수출 확대를 목적으로 협상에 나섰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최근 쌀시장 개방을 5년 늦춘 필리핀 역시 상대국에 쇠고기 관세 인하, 닭고기 검역조건 완화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축산단체가 “왜 쌀 때문에 축산물이 희생돼야 하냐”며 반발하기도 했다.
이르면 10월부터 시작될 관세율 검증 협상에는 쌀 수출국은 물론 한국 농산물시장에 눈독을 들인 나라들도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세율 산정 방식을 문제 삼아 전리품을 챙긴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남미권 국가들은 한국이 구제역을 이유로 축산물 수입을 제한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유럽은 유기농산물 표시제와 축산물 관세에 관심이 많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관세율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의 검증을 대비해 확실한 논리와 근거자료를 확보할 것”이라며 “관세율 검증 협상을 쌀 외의 문제로 확대하진 않겠다”고 밝혔다.
◆다른 협상에서 쌀 관세 지켜내야=농업계가 쌀시장 전면개방을 주저하는 주된 이유는 FTAㆍTPPㆍ도하개발아젠다(DDA)와 같은 대외 협상에서 쌀 관세가 더 낮아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미국은 한국에 더 많은 쌀을 수출하려고 한ㆍ미 FTA나 TPP를 적극 활용할 것”이라며 “중국 역시 한ㆍ중 FTA와 연계해 우리 쌀시장을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FTA나 TPP에서 쌀 관세율을 절대 건드리지 않겠다고 공언한다.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은 “모든 통상협상에서 쌀을 초민감품목군으로 지정해 관세율 인하 가능성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김진동 산업통상자원부 WTO과장은 “현재로선 DDA 협상이 단시일 내 타결될 가능성은 없다”며 “설령 DDA가 타결되더라도 쌀을 초민감품목으로 설정하면 관세를 그대로 유지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농업계는 정부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단순히 ‘쌀을 지키겠다’는 발언은 아무런 책임성과 구속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며 “정치적 약속을 담보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주도의 TPP 협상에 뛰어든 일본 사례도 농업계의 우려를 부채질한다. 일본정부는 지난해 초 TPP 참여를 선언하면서 쌀은 개방에서 제외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관세 철폐에 예외가 없다’는 미국의 집요한 요구로 쌀 관세에 손을 대야 할 상황이다. 민간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쌀을 개방 대상에서 빼겠다는 발언은 오히려 대외 협상력을 약화시켜 다른 품목의 희생이 뒤따를 수 있다”며 “차라리 쌀을 협상 대상에 포함하는 대외 협상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