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쌀값을 통제하기 위해 미곡종합처리장(RPC)을 압박한 모양이다. 물가당국인 기획재정부가 아닌 농림수산식품부가 쌀값 억누르기에 나섰으니 농민들의 실망감이 더 크다고 한다. 정부의 쌀값 통제가 도를 넘으면 쌀시장 안정을 위해 확대 추진하려는 수탁판매제도 정착시키기 어렵다.
농식품부가 수확기 쌀 수급불안을 막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RPC 평가방식 변경이다. 농식품부가 최근 마련한 ‘RPC 경영평가 및 운영제도 개선안’을 보면 공익성지수 2개 항목(수확기 벼 매입값 증가율·쌀 판매가격 증가율)을 신설했다. 새 항목은 지난해 수확기와 비교해 올해 농가로부터 벼를 높은 값에 살수록, 소비자 판매값을 높게 책정할수록 낮은 평가를 받도록 했으니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두 항목의 배점도 100점 만점에 거의 절반(농협 RPC 45점, 민간 RPC 50점)을 차지해 사실상 RPC를 통해 산지 벼 시세를 통제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정부가 지원하는 연간 1조2,000억원의 벼 매입자금으로 자금줄을 죄겠다고 하니 RPC로서는 평가방식이 못마땅해도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심지어 벼 매입가격과 쌀 판매가격을 지난해보다 5% 이상 올린 곳은 벼 매입자금 지원기간을 현재 1년에서 10개월로 단축하는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거론했다고 한다.
정부가 RPC에 대한 지원금을 볼모로 쌀 시세흐름에 개입하면 농민들의 설 자리는 없어지고 정책에 대한 불신만 커진다. 박민수 의원(민주통합당)·법률소비자연맹총본부가 최근 전국의 시민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10명 중 9명은 농촌이 못사는 이유를 ‘농촌의 구조적 문제’와 ‘농업정책에 대한 정부의 태도’라고 답했다. 그런데도 정부가 민감한 쌀 문제로 농심을 자극해서야 되겠는가. 쌀시장 안정에 필요한 수탁판매제 연착륙을 위해서라도 이번 RPC 평가방식은 재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