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콤달콤한 맛~ 떡볶이 고추장’이라고 쓰여 있는 한 양념상품의 뒷면을 확인해봤다. ‘요리를 위해 따로 재료를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큼지막한 설명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상품표시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제품 이름은 <떡볶이용 고추장>이었지만 원재료명에는 ‘고추혼합양념’으로 쓰여 있었다. 주원료로 사용된 고춧가루·마늘·양파 등의 원산지는 중국산이었다.
마트 관계자는 “중국산 혼합양념에 일부 다른 재료를 추가해 만든 상품이 요식업체에서 큰 인기”라며 “국내산 고춧가루나 마늘 등을 따로 구매해 양념을 만들던 식당이나 단체급식소가 이제는 혼합양념으로 대부분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중국 현지에서 만들어져 국내에 반입되는 양념류 상품의 수입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양념류 형태로 반입되는 상품은 ‘혼합조미료’와 ‘기타소스’다. 고춧가루·마늘 등을 적절히 배합한 형태로 들어와 라면 수프용이나 김치 제조용, 중국집 등 요식업체 요리용으로 수요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혼합조미료와 기타소스 반입량은 국내 양념채소 자급기반을 위협할 정도다. 실제 ‘다대기’로 불리는 기타소스 수입량은 2010년 6만2945t에서 2015년 7만3011t으로 14%(1만66t)가량 증가했다. 이는 최근 5년 사이 수입량이 가장 많은 것이다. 혼합조미료는 2010년 8335t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2년 6582t까지 떨어졌다가 2015년엔 다시 8213t이 들어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혼합조미료와 기타소스 수입량이 꾸준한 것은 관세가 낮은 영향이 크다. 이들 품목의 관세는 45%에 불과해 주원료로 사용되는 고춧가루(270%)·마늘(360%)의 정상관세에 비해 현저히 낮다.
고추·마늘 재배농가들은 이런 사정에 따라 혼합조미료와 기타소스의 원산지표시 단속을 강화할 것을 주문한다. 이와 함께 이들 품목에 들어간 고춧가루·마늘·양파 등 양념채소 함유량을 분석·추산해 전체 양념채소류 수입량을 산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야만 양념채소 수입에 따른 국내 재배농가의 피해를 정확히 도출할 수 있고, 적정 재배면적이나 생산량 등의 수급조절 대책 마련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일례로 혼합조미료·기타소스의 주원료로 쓰이는 고춧가루 값이 폭락하기 시작한 2015년 이후 이들 품목 수입량은 오히려 늘어 국내산 건고추 가격 형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고추·마늘 주산지 농협 관계자는 “중국산 혼합조미료와 기타소스가 국내 고추·마늘 시장을 초토화시키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며 “혼합조미료 등에 포함된 고춧가루·마늘 등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를 정확히 파악해 수입량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현재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고춧가루에 한해 혼합조미료 등에 함유된 수입량을 대략적으로 추산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농가피해가 막대한 만큼 건고추·마늘 등 품목별 세부 함유량을 분석·합산해 공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