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군 우강농협은 2015년 결산결과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10억여원의 적자를 봤다.
경영이 악화됨에 따라 평년 1만9400t 안팎이었던 수매량을 지난해 1만4000t으로 줄였다. 현재 재고량은 9300t에 달하고 1000여t을 야적해 놓은 상태다. 7~8월경에는 대부분 소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쌀값이 계속 하락하는 게 문제다. 충남농협의 1월 중 평균 쌀 출하단가는 20㎏당 3만4161원이다. 전월보다 1275원(3.6%), 전년 동기 대비 4714원(12.1%)이 떨어졌다.
소비가 줄고 판매가 감소하다 보니 재고가 쌓일 수밖에 없다.
2015년 충남지역 농협(RPC와 건조저장시설인 DSC 포함)에서 48만t을 수매했는데 1월15일 현재 34만7000t이 재고로 남아 있다. 큰일이다. 2015년 결산 결과를 보니 25개 농협 RPC 가운데 17곳이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전국 처음으로 사후정산제를 도입하는 등 자구적 노력을 펼쳤지만 한계에 부닥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엔 고품질 원료곡을 확보하기 위해 <삼광>벼 위주로 1~2개 품종만 공동육묘해 공급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양 위주에서 질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강문규 우강농협 조합장(충남농협 RPC운영협의회장)은 “정부가 재고처리를 위해 2013년산 56만t을 처리한다는데 결국 그 양만큼 신곡 소비가 안 되는 것”이라며 “1~2개월 후면 볍씨를 뿌려야 하는데 여전히 정부 보급종으로 다수확 계통의 품종을 보급하고 있다. 이는 정말로 이해가 안 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전북 부안중앙농협 역시 쌀 판매확대에 전력을 다했지만 2014년 5억1900만원 적자에 이어 2015년 3억1300만원 적자로 2년 연속 RPC 적자를 봤다.
자본금 1400억원 규모의 농촌농협에서 RPC 3억원 적자는 경영을 흔들 만큼 영향을 준다. 그럼에도 지난해 대풍작으로 전년보다 1299t 늘어난 1만447t을 수매했다. 쌀값 하락으로 50%는 도정해 팔고 50%는 조곡으로 판매하고 있는데, 쌀값 하락이 지속되면 도정 판매비율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신순식 부안중앙농협 조합장은 “지역농협들이 저금리 속에 원곡을 더 가지고 갈 수 없어 2월 결산총회 이후 처분하기 시작하면 쌀값은 더 떨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면서 “구곡을 사료용으로 쓰겠다는 정부안은 재고량이나 쌀값에 큰 영향을 줄 수 없는 만큼 대북지원이나 20만~30만t 이상 추가격리가 이른 시일 내에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풍년으로 전국 최고 생산량을 기록한 전남지역의 경우 농협에서 자체 매입한 벼는 모두 35만6000t.
이는 지난해 31만6000t보다 13%(4만t) 정도 많은 물량이다. 반면 지난해에 이은 불경기와 쌀 소비 감소, 재고 물량 누적 등에 따른 쌀값 하락과 판매 부진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남지역 농협의 경우 30만t 정도를 재고 물량으로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주 동강농협(조합장 김재명, RPC광주·전남운영협의회장)의 경우 지난해 23만가마(40㎏들이 벼 기준)를 수매해 현재 20만가마 이상이 남아 있다. 이는 지난해 이맘때에 비해 재고가 3만가마 정도 많은 것이다.
김재명 RPC광주·전남운영협의회장은 “우리 농협의 경우 현재 쌀값 하락 추세대로라면 쌀로 인한 적자만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어나 5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정부는 하루빨리 15만7000t 정도를 추가로 시장격리해 가속화하고 있는 쌀값 폭락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북 의성군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대표 정성진·전국농협통합RPC협의회장)의 경우 지난해 1만8000t의 원료곡을 매입해 겨우 적자를 면할 정도로 수지를 맞췄다. 하지만 올해는 수매량이 2만2000t으로 20% 이상 증가한 가운데 산지 쌀값이 지속적인 하락 추세를 보임에 따라 경영 전망이 매우 어두운 상황이다.
정성진 대표는 “쌀 시장격리의 경우 관리비가 많이 들 뿐 아니라 이듬해에 다시 풍년이 들면 농가는 농가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똑같은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쉽지는 않겠지만 정부가 고령농가 등에 대한 소득보전대책을 강화해 생산구조 조정을 통한 수급조절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쌀 판매와의 전쟁은 이른바 ‘경기미’도 예외가 아니다.
홍진기 경기RPC협의회장(서화성농협 조합장)은 “서화성농협이 주관하는 수라청연합미곡종합처리장은 지난해 가을 2014년과 같은 1만5000t의 추곡을 수매해 20억원의 적자가 발생했지만 서화성농협을 비롯, 인근 남양·수원·발안농협 등과 공동출자해 설립한 까닭에 참여농협이 그 적자를 나눠가진 상황”이라면서 “3억~6억원에 이르는 참여농협의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서는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쌀을 저가로 판매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선 한국쌀전업농 강원도연합회장은 “언제까지 쌀 농가들은 풍년이 들어도, 흉년이 들어도 걱정을 달고 살아야 하느냐”면서 “재고 부담을 덜기 위해 재배면적을 줄이라는 건 대책이 아니라 임시방편에 불과한 만큼 현재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사료용 건초·옥수수·밀 등의 수입량을 줄이고 5년 이상 된 재고미를 사료로 사용하도록 하거나 쌀 가공제품 개발을 적극 지원해 재고 부담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승범 한국쌀전업농 충북도연합회장 역시 “지난해 쌀 농가들의 계속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적정 물량의 격리 시기를 놓쳐 수확기 이후 쌀값이 지속적으로 하락한 원인이 됐다”며 “과잉생산된 쌀의 추가 격리는 물론 최소시장접근(MMA) 물량이 시장에 풀리지 않도록 적절하게 격리하는 방안 등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진=이승인, 나주=박창희, 부안=김윤석, 의성=김용덕, 화성=백연선, 삼척=김명신, 청주=류호천 기자 silee@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