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업경쟁력 향상과 농촌경제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해왔던 주요 비과세·감면 제도가 대폭 축소될 위기에 처했다. 재정당국이 새정부 국정과제 추진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2017년까지 비과세·감면 같은 조세지출을 대폭 줄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업계에서는 농업·농촌의 여건을 감안, 비과세·감면 축소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농어민 혜택 계속 줄었는데
정부는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거나 기존 세율을 높이는 대신 그동안 방만하게 운영돼 왔던 조세지출 제도를 정리해 18조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이는 정부가 3월에 발표한 ‘2013 조세지출 기본계획안’에서 밝힌 15조원보다 3조원 늘어난 규모다. 김낙중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일몰(비과세·감면 시한)이 도래하는 조세지출 항목을 다 짚어봤고, 이 가운데 줄일 수 있는 항목을 집계했더니 18조원이 나왔다”며 “부처간 협의가 더 남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비 대상) 기준이나 항목을 얘기하기는 이르다”고 밝혔다.
정부는 조세지출 정비 과정에서 연구개발(R&D)·창업처럼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 창조경제 구현 분야는 세제혜택을 더 늘리는 대신 장기간 유지된 제도는 과감하게 폐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농업 관련 제도가 정비 대상 우선순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렇지만 농업 분야 조세지출은 세간의 인식과 달리 그동안 꾸준히 감소해 왔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농어민 대상의 조세지출은 2009년 5조6076억원에서 2012년에는 4조6257억원으로 1조원 가까이 줄었다. 농촌경제가 급속히 위축된 탓이다. 이를테면 농기자재 부가가치세 영세율에 따른 세금 감면액은 3년간 1385억원이나 줄었다.
이에 반해 대기업·중소기업·자영업자·근로자 등 농어민을 뺀 나머지 모든 분야·계층의 수혜액은 늘었다. 세제혜택을 요구하는 각계의 요구가 컸고, 경제활성화 차원에서 상당 부분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에 대한 비과세·감면액은 3조9468억원에서 4조6047억원으로 급증했고, 올해는 농어민 수혜액을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농업 경쟁력·농촌 경제 흔들, 신중한 접근을
2012년 기준 전체 비과세·감면액은 220여개 항목에 29조7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농림수산 분야는 30여개 항목에 5조2000억원이 지원됐다. 지난해 농림수산 분야 비과세·감면 비중이 17.5%란 점을 고려하면, 단순 계산상으로는 2014~2017년에 3조2000억원(18조원×17.5%), 연간 8000억원이 줄 수도 있을 것이란 얘기다.
이에 따라 농업계에서는 정부가 비과세·감면 축소에 농업·농촌 여건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2011년 여·야·정 협의체가 면세유와 농기자재 부가세 영세율을 10년 연장하기로 약속한 취지를 정부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농업계의 요구다. 특히 면세유와 농기자재 부가세 영세율, 자경농지 양도세 감면 등 당장 폐지가 어려운 제도 이외에 현재 농업·농촌에서 시행중인 비과세·감면 제도는 모두 농업 경쟁력이나 농촌 경제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제도라는 것이다. 비과세·감면 축소에 신중론이 나오는 까닭이다.
재정·금융당국은 ‘3000만원 이하 조합 예탁금의 이자소득 비과세’ 같은 상호금융 비과세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법인세를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2012년 기준 지역농협의 비과세 예탁금이 전체 예수금의 30%인 63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 제도가 폐지되면 농촌경제의 급격한 위축을 불러올 것으로 우려된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비과세 예탁금이 폐지되면 지역농협 한곳당 6억원의 수익이 감소하면서 500개 조합이 적자로 전환된다”며 “농촌경제가 크게 흔들릴 수 있는 사안”이라고 했다.
박상희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실장은 “우리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미국과 유럽은 다양한 비과세·감면 제도로 농업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며 “사회적 약자인 농업인 대상의 세제지원을 줄여 부족한 예산을 메우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농민단체 차원에서 적극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