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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들녘 속으로 글의 상세내용
제목 황금빛 들녘 속으로
부서명 농업기술센터 등록일 2019-10-10 조회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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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농민신문





충남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의 관록재들. 여물어 가는 계절의 풍경을 차분히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村스러운 걷기 여행] 충남 예산군 대흥면 옛이야기 길


국내 6번째 슬로시티…‘의좋은 형제’ 설화 배경


천천히 흘러가는 시골마을서 여유 만끽


구절초꽃 흐드러진 봉수산 수목원도 들르길


 


선선했던 공기가 한층 더 차가워졌다. 시간이 그렇듯 계절도 참 꾸준하게 흐른다. 파란 하늘이 반가웠던 가을엔 이제 빨갛고 노란 잎들이 하나둘씩 걸릴 테다. 따사로운 햇볕은 앞으로 얼마큼 남았을까. 부지런히 이 가을을 만끽해야 할 때다.




가로수의 단풍을 기다리지 않아도 완연한 가을을 누리는 법이 있다. 그저 도시를 벗어나 한갓진 전원으로 향하면 된다. 누렇게 익은 시골 가운데를 걸어보라. 느끼고 자실 겨를 없이 가을이 곁으로 밀려온다. 이맘때 충남 예산군 대흥면의 옛이야기 길도 그렇다. 특별하진 않아도 그윽한 가을의 풍경을 거닐 수 있다.






한가롭고 조용한 시골길




옛이야기 길이 자리한 대흥면은 애틋한 형제애를 다룬 설화 ‘의좋은 형제’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벼 베기를 끝낸 가을밤, 형제가 서로 상대편의 살림을 걱정해 자신의 볏단을 몰래 가져다주다 도중에 만나 얼싸안고 울었다는 이야기. 이는 그저 허구가 아니라 고려말과 조선초 이곳 대흥에 살았던 이성만ㆍ이순 형제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우리나라엔 15곳의 슬로시티(Slow city)가 있다. 슬로시티란 느림의 철학을 바탕으로 자연과 전통문화를 지키는 삶을 추구하는 지역이다. 대흥면은 우리나라에서 여섯번째로 선정된 슬로시티다. 현재 세계적으로 30개국 252개 지역이 국제슬로시티연맹의 슬로시티로 지정돼 있다.




길의 첫머리인 대흥면 상중리 어귀엔 정말 그 이름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시골마을의 풍경이 있다. 그리 높지 않은 봉수산. 그 자락이 안은 조용한 농가들의 맞은편 2층 높이의 초등학교에선 분명 달음박질하며 노는 듯한 몇몇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촌은 촌이지만 낙후된 풍경은 아니다. 흙길이었을 골목들은 예전 좁은 너비를 유지한 채 포장이 돼 있고, 작은 울타리나 돌담들이 길가를 소담하게 둘렀다. 고즈넉한 경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제법 깔끔하게 정비된 길이다.




작은 집들 앞엔 작은 밭들이 있다. 얼얼한 내 내는 빨간 고추밭, 누르스레 여물어가는 콩밭, 햇볕 아래 가지런히 뉜 깻단들. 한쪽에선 허리 굽은 할머니가 배추 속 벌레를 잡고 있다. 모두 그 크기가 아담한 풍경들이다.




“저수지를 만들면서 옛날 농사지었던 땅이 많이 수몰됐지. 여긴 산자락이라 크게 먹고살 건 없어유. 고라니가 안 뜯어 먹는 것들로다가 참깨나 들깨 같은 거 조금씩 짓고 사는 거쥬.”




새 지저귀는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는 길. 찌르르르 벌레 소리도 귓가에 꽤 크게 와닿는다. 모두 짙은 것들 속에서 날 좀 봐달라는 듯 우는 게 여름벌레라면, 가을벌레는 어떠한 의도 없이 그저 제 목소리만 내는 듯하다. 계속 들으며 걸어도 거슬리거나 귀찮지 않다. 가만히 있어도 그 마음이 편해, 발걸음은 조금씩 느릿해진다.






누런 들판 가운데 선 풍경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울을 건너, 조붓한 시골길을 따라 걸으면 비탈에 자리한 다랑논이 나온다. 관록재들이란 이름의 이곳 들판은 예당저수지가 생기면서 만들어진 곳이란다. 쌀이 나는 농지가 물에 잠기면서 본래 산자락의 밭이었던 곳을 논으로 바꾼 것이다.




층이 거듭된 논을 양옆에 끼고 가운데로 난 굽이진 길을 걷는다. 아직 조금은 푸른색이 낀 누런 들판. 얼마간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들판 너머 지척으로 예당호가 보인다. 뿌연 안개에 가린 겹겹의 산세가 풍요로운 경치에 한적한 멋을 더한다. 대부분의 시골길은 다니는 이 없이 조용하다. 그러니 약간 경사진 길 위에 그대로 앉아봐도 좋다. 따로 벤치가 없더라도 잠시 쉬어갈 자리로는 충분하다.




다시 마을 안쪽을 돌아 봉수산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 그 길의 오른편엔 봉수산 수목원으로 가는 길이 나 있다. 어느 곳으로 가도 결국 같은 길로 만난다. 그러니 조금 돌아가더라도 수목원에 들러 하얀 구절초꽃 흐드러진 정원을 거닐어 보는 것도 괜찮다. 자연휴양림을 지나 다시 마을로 내려가는 구간에서 호젓한 분위기의 숲길을 한동안 걷는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어서 풋풋한 흙내는 덜하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르익을 단풍이 걷는 이의 기운을 북돋워줄 테다.




동서리 마을로 접어들면 오른편에 또 다른 다랑논과 마주한다. 논과 논 사이마다 자리한 두렁길. 바지런한 농부가 풀을 벤 덕에 논두렁엔 걷기 좋게 잔풀만이 남았다. 사박사박한 소리가 발길에 스친다. 낯선 인적에 놀랐는지, 고라니 한마리가 후다닥 튀어 달아난다. 멋쩍게도 잠시 그 빈자릴 취한다. 사방이 누런 들판 한중간에선 눈길은 갈 길을 잃고 마음속으로 향한다. 시간이 잠시 봇짐을 푼다. 가을에 이만큼 깊숙이 들어온 적은 아마도 이제껏 처음인 듯하다. 층층이 낮아지는 논배미 위로 백로의 날갯짓이 심히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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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