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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뜰] 멀리, 높이 바라보는 한해 글의 상세내용
제목 [인문학의 뜰] 멀리, 높이 바라보는 한해
부서명 농업기술센터 등록일 2019-01-04 조회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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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농민신문





내 발밑의 삶은 각박하겠으나 그래도 새해가 좋은 건 무언가 결심할 수 있기 때문


작심삼일일 줄 알면서도 적어도 그 삼일은, 새롭거나 즐겁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도대체 우주는 어디로 팽창하고 있는 것일까. 단순한 질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한 대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듯하다. 미치오 카쿠는 대중물리학 개론서인 <평행우주>에서 그 대답을 이렇게 말한다. ‘우주가 팽창해나가는 곳은 없다. 왜냐하면 우주이기 때문이다. 우주 자체가 공간이고 우주에는 ‘외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중서인 만큼 보통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것일 텐데,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사실 우주라는 것 자체가 그러하지 않겠는가.



우주가 팽창한다는 말을 할 때, 중요하게 거론되는 사람 중의 하나는 에드윈 파월 허블이다. 허블은 윌슨천문대의 관장을 하는 동안, 당시 세계 최대 크기였던 천체망원경을 통해 별들이 이동하는 거리와 속도를 관측했고 그로부터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관측적으로 입증했다. 영화 <그래비티>에 나오는 우주망원경이 바로 이 사람의 이름을 땄다. 우리가 우주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데에는 망원경의 역할이 크다. 망원경은 세상을 보다 멀리 볼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보다 넓게 볼 수도 있게 했다. 멀리 보는 것은 기술적인 문제이지만 넓게 보는 것은 과학의 문제이기도 하고, 예술의 문제이기도 하다. 상상의 폭이 넓어지고 꿈의 크기가 커진다.



지난 한해 대중과학서를 소일 삼아 읽곤 했는데, 우주에 관한 책들은 언제나 흥미로웠다. 그 책에 나오는 숫자들 때문이었다. ‘천문학적’이라는 말이 괜히 수사적으로 쓰이는 게 아니어서 그 엄청난 숫자들을 읽고 있다보면 이 세상은 얼마나 작은가, 나는 또 얼마나 작은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억 단위의 숫자도 말할 기회가 별로 없는 게 내 삶이다. 그래서 초라하고 비루하게 여겨지기보다는, 그래서 소박하고 안전하고 다정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말하자면 잠깐잠깐 우주를 생각하고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내게는 일종의 힐링이었던 셈이다.



우주를 이야기하려면 허블의 조수였던 밀턴 휴메이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허블의 거의 모든 연구, 그리고 업적을 함께했던 휴메이슨은 윌슨천문대의 노새몰이꾼이었다. 교통수단이 매우 좋지 못했던 당시에 산 높은 곳에 있는 천문대까지 과학장비를 운반하는 일을 주로 맡아했던 게 노새였던 모양이다. 휴메이슨은 그 노새를 몰다가, 천문대의 망가진 수도나 하수구를 고치기도 하다가, 슬쩍슬쩍 망원경도 보다가, 어느 날부턴가는 관측 전문가가 돼 있었다. 그는 천문대의 정직원이 됐고, 허블의 조수가 됐고, 더 넓은 우주를 우리에게 보여줬고, 과학 역사책에 등장하는 인물이 됐다. 일부러 짜맞춘 위인의 전기처럼, 전형적이다. 바닥부터 정상까지, 땅에서부터 우주까지 휴메이슨의 일생은 팽창을 거듭해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그리고 이 사회에서도 휴메이슨과 같은 성장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이 시대는 노력과 성공의 기회가 구조적으로 닫혀 있어서 팽창이나 도약이라는 것이 불가능해보인다. 한 개인에게 ‘빅뱅’이 존재할 기회가 없어 보이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노새몰이꾼이 위인이 되는 일은 지나간 시대의 동화 같은 이야기로만 들린다. 그렇더라도, 새해가 아닌가. 괜히 하늘도 한번 더 바라보고, 우주는 어디로 팽창하는지 한번 더 생각해보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꿈도 한번 꿔볼만 하지 않은가. 다른 사람이 아니면 어떤가. 다른 꿈, 지쳐 있느라 생각도 못해봤던 꿈, 생각하기도 싫었던 꿈, 그런 꿈에 하루쯤 빠져본다고 해도 나쁠 건 없을 것이다. 내 발밑의 삶은 언제나 각박하겠으나, 내 발밑의 수렁이 때로는 우주보다도 더 거대하겠으나, 그래도 새해가 좋은 건 무언가를 한번쯤 결심해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작심삼일일 줄 알면서도, 적어도 그 삼일은, 아니면 그 삼일 중의 하루라도 새롭거나 즐겁게 보낼 수 있지 않겠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바란다. 더 넓게, 더 많이 꿈꾸는 한해가 되시기도 바란다. 평소에 전혀 관심 없던 책도 느닷없이 한번 들쳐보시기 바란다. 힐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 않더라도, 느닷없는 위로를 그 안에서 받으실지도 모르니.


 








김인숙은…



▲소설가 ▲저서 <모든 빛깔들의 밤> <소현> <안녕, 엘레나> <제국의 뒷길을 걷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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