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배추보다 절임배추·김치 완제품 선호…가공공장 납품 맞추려 중도매인 경쟁 심화
유례없는 배추값 폭등 사태에 대해 이상기후 외에 유통구조가 원인으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원인이 따로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달라진 채소 소비경향과 대체 소비품목 부재가 그것이다.
추석 직후 폭등한 배추값을 두고 이상기후로 인한 생산량 감소 외에 여러가지 원인이 제기돼 왔다. 4대강사업으로 인한 재배면적 감소라는 지적이 나오더니 최근에는 복잡한 농산물 유통구조가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달라진 배추 소비경향 즉 가공용·식자재용 소비가 증가한 것이 원인이라는 전혀 다른 시각을 내놓고 있다.
최근 국내 가정의 식품소비 지출은 신선식품 구입보다는 가공식품과 외식소비 중심으로 바뀌는 추세다. 그 여파로 신선채소 구매자가 일반 소매점에서 외식업체나 가공공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배추도 마찬가지여서 소비자들이 신선배추를 직접 구매하는 비율은 감소하고, 배추김치나 절임배추 상태로 구매하거나 외식을 통해 소비하는 비율은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연간 생산하는 배추김치 중 가공용 배추김치의 비율은 2000년 16%에서 2006년 32%로 두배나 늘어났고 일반 가정에서 김치를 사 먹는 비율도 2004년 6.8%에서 2007년 13.6%로 두배 늘었다. 외식업체가 소비하는 배추와 무·양배추 물량도 전체 생산량의 32%를 차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배추 소비 중 가공이나 식자재 소비 비율이 늘어나면서 가격에 관계없이 반드시 소비해야 하는 물량이 증가했고 물량을 확보하려는 중도매인간에 경쟁이 격화되면서 배추 가격이 폭등했다는 것이다.
가락시장 한 관계자는 “식자재나 김치공장에 납품하는 중도매인들은 발주 받은 물량을 납품하지 못하면 위약금을 물거나 향후 재계약에서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일단 발주 물량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이런 물량이 적을 때는 공급량이 줄어도 큰 문제가 없었는데 이런 납품 물량이 증가하면서 공급량이 줄면 물량 확보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결국 가격 폭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대체 품목 부재라는 특수한 상황도 한몫 했다는 지적이다. 농산물의 경우 가격이 어느 정도 오르면 비슷한 성격의 다른 품목으로 소비가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배추값이 오르면 배추 소비가 줄고 얼갈이배추 소비가 늘어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서 배추 가격 상승이 멈추거나 하락하는 등 자연스럽게 가격 조정이 이뤄지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대부분의 채소 품목이 작황 부진을 겪으면서 이 같은 조정 효과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권승구 동국대 교수는 “앞으로도 이상기후는 이어질 것이고 이번과 같은 파동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면서 “유통구조 개선도 중요하지만 소비패턴 등 요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해서 대안을 세워야 실질적으로 효력 있는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희 기자
출처 : 농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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