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무수입쌀 증량 부담으로 관세화 결정=대만은 2002년 쌀시장을 부분 개방하는 조건으로 WTO에 가입했다. 연간 국내 소비량의 8%인 14만4720t(이하 현미 기준)만 의무적으로 수입하고, 일반 쌀시장은 개방하지 않기로 한 것. 당초 대만은 한국과 같은 개도국 대우를 주장하며 의무수입량을 국내 소비량의 4%로 설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쌀 수출국들은 선진국 조건인 8%를 고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대만 내부에서는 의무수입물량 부담이 없는 관세화(전면 개방)를 단행하자는 주장도 나왔지만, 쌀시장 개방 충격을 줄여야 한다는 이유로 관세화 유예(부분 개방)가 최종 결정됐다.
대만의 쌀시장 부분 개방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미국은 대만이 관세화 유예를 1년 연장할 때마다 의무수입물량을 2%포인트씩 16%까지 늘릴 것을 요구했다. 의무수입쌀 부담이 클 것으로 판단한 대만 정부는 2003년 관세화 전환을 목표로 대응전략 마련에 나섰다. 우선 쌀 관세율을 최대한 높게 설정하려고 관세율 산정의 기초가 되는 국내 가격은 브랜드 쌀 소포장 가격을, 국제 가격은 태국산 가공용 찹쌀 수입가격을 활용했다. 이렇게 산출된 쌀 관세상당치(TE)는 1㎏에 53대만달러였다. 관세율은 TE에서 선진국 최소감축률 15%를 적용한 45대만달러로, 당시 환율을 적용한 종가세로는 563%에 달했다.
◆검증협상 5년 걸려=2002년 9월30일 대만은 쌀 관세율을 담은 양허표 수정안을 WTO에 제출했다. 그렇지만 일부 자료가 누락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그해 10월16일 수정안을 또다시 제출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수정안에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국별쿼터 배분 규정이 없었고, WTO 가입조건이었던 의무수입쌀의 사료용·해외원조 사용제한 규정도 삭제했다. 수입쌀의 용도제한 삭제 여부를 놓고 대만 정부 내에서는 “불합리한 규정이기 때문에 당연히 삭제해야 한다”는 공세론과 “삭제하면 쌀 수출국을 자극해 협상이 곤란해진다”는 수세론이 충돌했다. 결국 “검증 협상에서 양보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WTO 제출 서류에서는 용도제한 규정이 삭제됐다.
대만의 관세화 계획에 대해 미국·호주·태국·말레이시아 4개국이 이의를 제기했고, 곧바로 검증 협상이 시작됐다. 이 중 미국이 대만을 끝까지 괴롭혔다. 미국은 대만이 제출한 TE 53대만달러가 터무니없다고 공격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입수한 대만 가격 자료를 토대로 적정 TE가 5대만달러라고 주장했다. 또 미국쌀의 고정적인 수출이 보장될 수 있도록 국별쿼터를 설정하라고 요구했다. 수입국 입장에서 국별쿼터는 국제시세와 관계없이 특정국 쌀을 반드시 구매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관세율 산정의 정확성과 국별쿼터 설정 여부를 놓고 지루하게 진행되던 협상은 2005년 급물살을 탔다. ‘국별쿼터를 배분하되, 구매 입찰이 3회 유찰되면 총량쿼터로 전환한다’는 대만의 제의를 미국이 전격 수용했다. 미국은 대만의 쌀 관세율과 국별쿼터 운용방식에 불만이 컸지만, 베트남의 WTO 가입(2007년)이 임박하면서 서둘러 협상을 진행했다. 베트남이 WTO에 가입하면 국별쿼터 배분국이 늘면서 미국에 할당될 물량이 줄어들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부대조건 양보로 고율관세 유지=2007년 대만과 이의제기 4개국은 대만이 산정한 쌀 관세율을 인정하되 국별쿼터를 설정하고 의무수입쌀의 사료용·해외원조 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대만으로선 고율관세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다른 부대조건을 양보한 것.
협상 결과에 대한 내부 평가는 엇갈린다. 일단 높은 관세율을 관철시킨 점은 쌀농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다. 또 쌀 협상과 연계한 다른 품목의 추가 개방이 없었다는 점도 성과로 꼽힌다. 한편으론 수출국들로부터 폐지 압박을 받았던 수매제도 지금까지 유지해오고 있다.
다만 수입쌀의 사료용 처분이나 해외원조가 막히면서 국내 수급조절에 애를 먹고 있다. 또 수입쌀을 대만산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조항 때문에 수입쌀의 밥쌀용 판매 비중도 일본보다 높은 편이다. 게다가 대만 정부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여부를 저울질하면서 기존 회원국인 미국·호주의 추가개방 압력도 한층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