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능금농협 문경거점산지유통센터에서 농협 청과사업단 김병균 팀장(왼쪽부터)과 노정석 부장, 박진웅 센터장이 사과 품질을 살펴보고 있다.
설 대목이 가까워지면서 산지와 시장 관계자들의 움직임이 점차 분주해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사과를 시작으로 배, 감귤·만감류, 단감·곶감류 등 주요 과일 수급 동향을 네차례에 걸쳐 점검한다.
설명절(2월19일)을 딱 한달 앞둔 19일 오전, 경북 문경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선별장에선 잘 익은 사과가 쟁반모양의 트레이를 탄 채 곡선형으로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 위를 바삐 오가고 있었다. 벨트에는 무게별로 사과를 모으는 지점이 중간중간 자리하고 있었고 사과는 해당 지점에 다다르면 벨트 아래 놓인 노란색 플라스틱 컨테이너(상자)에 착착 담겼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사과 선별 모습이지만 특징이 하나 있었다. 과 크기가 예년보다 커진 것. 15㎏들이 한상자 기준으로 30~39개가 담기는 크기인 이른바 3단위가 자주 눈에 띄었다. 이는 인근 대구경북능금농협 문경거점산지유통센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배를 연상케 할 만큼, 한개당 무게가 600g을 웃도는 2단위 사과도 적지 않았다. 어른 손으로 쥐기 알맞은 5·6단위 사과는 선별장과 저장고 전체를 뒤져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올 설 대목 사과 판매는 ‘대과와의 전쟁’이 될 듯하다. 지난해산 사과 생산량은 1년 전과 비교해 3~4% 줄었지만 대과 비율은 크게 늘어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서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확정 발표한 2014년산 사과 생산량은 47만5000t. 전년 대비 3.8% 감소한 것이다. 하지만 문경·영주·봉화 등 경북지역은 물론 경남 밀양·거창, 전북 무주·장수, 충북 충주 등 전국 주요 사과 산지관계자들은 대과 비중이 크게 늘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양하 문경농협 팀장은 “시장에서 가장 잘 나가는 물량을 일컫는 ‘센터’가 예년엔 5·6단위였지만 지난해 말부터는 4단위로 내려왔다”면서 “요즘엔 대형 유통업체 판촉행사(이른바 세일) 상품조차 4단위 이하가 점령하다시피 했다”고 밝혔다.
당도는 좋은 반면 색택이 기대 이하라는 점도 전국적인 공통점으로 꼽힌다. 박진웅 대구경북능금농협 문경거점산지유통센터장은 “선별과정에서 13브릭스(Brix) 이하를 거의 발견할 수 없을 만큼 당도가 높은 반면, 지난해 수확기인 10월 말을 전후해 전국적으로 비가 이틀에 한번꼴로 자주 내린 탓에 색택 면에선 예년 수준을 못 따라가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설 대목엔 늘어난 대과를 선물세트로 집중 처리해 대목 이후의 수급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색택이 가격을 결정하는 주된 변수로 부상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사실 시장에선 선물세트 원물로 3단위를 선호하는 게 일반적이긴 하다. 선물용인 만큼 아무래도 대과를 찾는 경향이 커서다. 하지만 대과 공급물량이 많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시장 가격은 다소 낮아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일부에선 최근 10년 내 설 대목 가격으로는 최저 수준이 될 것이라는 예측마저 내놓고 있다. 반면 가격이 저렴해진 만큼 소비는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감 또한 적지 않다.
김병균 농협 청과사업단 팀장은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은 지난해보다 25~30% 내릴 것으로 보인다”면서 “소매 기준으로 5㎏들이 한상자당 4만원대가 대세일 것으로 예상되고 품위에 따라선 3만원대 후반의 가격대도 등장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물론 이런 선물세트 가격 예상은 현재 산지 시세를 감안하면 이례적인 것이다. 산지 시세는 경북지역만 하더라도 지난해 12월 이후 농가 보유 단위(18㎏들이 한상자) 기준으로 5만~5만5000원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10월 중·하순 시세(4만5000~5만원)보다도 소폭 오른 것이다. 노정석 농협 청과사업단 과일부장은 “산지 입장에선 선물세트 가격 하락이 반가운 것만은 아니지만 대과의 경우 저장성이 떨어지는 만큼 가격을 좀 덜 받더라도 설 대목에 털어내는 게 장기적으론 유리한 데다, 주머니가 가벼워진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에 좋을 수도 있다”면서 “농협은 올 설 명절에 <참큰사과>라는 이름으로 6㎏들이 12개 상자품을 최초로 선보이는 등 대과가 최대한 소비될 수 있도록 산지를 도울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