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은 1996년 구제역 박멸을 위한 계획을 수립해 추진한 이후 15년 만인 2011년 백신 미접종 청정국 지위를 얻었다. 사진은 필리핀 돼지농장 모습.
우리나라는 지금 구제역 등 가축전염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렇지만 축산 강국은 물론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뒤처진 국가도 지속적인 방역을 통해 ‘백신 미접종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우리와 축산업 여건이 비슷한 국가 중 백신 미접종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필리핀·덴마크·일본 등의 가축방역 사례를 알아본다. 가축질병 발생을 막기 위한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다.
◆5년째 청정국 지위 유지=필리핀은 2011년 세계동물보건기구(OIE)부터 ‘백신 미접종 청정국’을 인정받은 뒤 지금까지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2005년 12월28일 이후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고 있는 데 따른 당연한 결과다.
필리핀은 현재 동남아 지역의 몇 안되는 구제역 청정국이란 자부심 아래 구제역의 유입 방지를 위한 워크숍 활성화, 시뮬레이션 연습, 축산단체와의 협력 강화 등에 힘을 쏟고 있다. 최소한 구제역 방역에서만큼은 우리보다 ‘행복’을 구가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노력 기울였나=필리핀에서 구제역이 처음 보고된 것은 1902년. 이후에도 구제역으로 홍역을 치른 필리핀은 1995년 루손섬에서 또다시 구제역(O형)이 발생하자 급기야 ‘구제역 테스크포스(NFMDTF)’를 조직하고, 통제(1996~2000년)·안정화(2000~2004년)·박멸(2004~2009년)이라는 3단계의 장기적인 구제역 방제 계획을 마련했다. 10여년에 걸쳐 엄격하고 지속적인 방역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이 계획의 핵심은 구제역에 대한 감시와 대중 이해도 확대(홍보 강화), 가축 이동관리, 백신 등 4가지 요소를 통합하는 것으로, 특히 ‘규정준수감시팀(CMT)’은 구제역을 박멸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CMT의 역할은 구제역 발생 위험이 높은 지역의 농장이나 시설 등에서 가축 이동 및 도축 등과 관련된 정부 규정을 잘 따르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것으로, 감염된 가축에 대해선 소유주에게 어떤 보상도 하지 않고 몰수나 폐기를 강제로 명령하는 게 가능했다. 이 때문에 당시 농민들과 생산자단체 사이에선 CMT의 역할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CMT는 이에 굴하지 않고 보다 엄격한 감시를 통해 당국이 구제역 관련 정책을 입안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생산했다. 또 당국은 농가들에게 ‘구제역과 관련해서는 엄격한 조치를 철회할 생각이 없다’는 메시지를 CMT를 통해 전달했다. CMT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백신 과감히 교체=필리핀이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백신이다. 1995년 이전엔 O1·A24·C3형 등 3가지 구제역 바이러스가 발생함에 따라 주로 유럽에서 3가 백신을 수입해 사용했다.
하지만 1995년 루손섬에서 발생한 구제역의 혈청이 O형으로 확인되자 이때부터 유럽산 ‘O-마니사’ 항원 단가백신을 사용했고 결국엔 자국의 구제역 바이러스에 더욱 적합한 ‘필리핀 97’ 백신으로 대체했다. 이후 3년간 구제역 발생이 없자 필리핀 정부는 2009년 더 이상 백신접종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다고 공포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2010~2011년 구제역 파동 이후 예방백신을 접종, 천신만고 끝에 2014년 5월 OIE로부터 ‘백신 접종 청정국’이란 지위를 얻었지만 불과 2개월 후인 7월 경북 의성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2개월 만에 지위를 상실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구제역이 계속 발생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백신에 대한 효능 논란이 커지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3가형 백신(A형·O형·아시아1형)을 사용하고 있다. 일부에선 O형 단가백신을 써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백신을 수입하기 위해선 8개월 정도가 소요된다는 얘기만 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