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협정 눈치보는 ‘정부’…생존권 내세운 ‘업계’ 반대쌀 재포장 금지법 표류 국회 농해수위, 결론 못내려 ‘수입쌀’ 국산둔갑 차단 차질 수입쌀의 국내산 둔갑유통을 차단할 법안으로 농업계의 큰 기대를 모았던 쌀 재포장 금지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관련 업계가 각각 국제협정 위배 소지와 생존권을 내세워 법안 처리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률안심사소위원회는 최근 수입쌀 재포장을 금지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심사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농해수위 관계자는 “정부가 반대 입장을 피력해 4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개정안은 쌀시장 전면개방 결정을 앞둔 지난해 7월 윤명희 새누리당 의원(비례대표)이 발의했다. 윤 의원은 “밥쌀용 수입쌀이 재포장을 거쳐 국내산으로 둔갑유통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단속이 쉽지 않은 실정”이라며 “포장지가 바뀌면 이후 추적이 불가능한 만큼 재포장을 금지하는 게 수입쌀 불법유통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밥쌀용 수입쌀은 현지에서 흰쌀로 도정된 뒤 10㎏과 20㎏들이 종이포대에 담겨 국내로 들어온다. 신선도나 비용을 따져봤을 때 굳이 재포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둔갑유통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도매가격이 국내산의 60~70% 수준인 수입쌀을 국내산으로 팔면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유혹 때문이다. 최근 수입쌀과 국내산 쌀의 혼합유통이 금지되면서 포장지만 바꾸는 포대갈이 수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농해수위 법안소위에 상정됐지만, 정부가 ‘수입쌀만 차별하면 국제협정에 위배된다’며 추가 검토를 요구해 2월 임시국회로 넘어왔다. 이에 윤 의원은 재포장 대상에 국내산까지 포함하는 수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윤 의원은 “재포장이 금지되면 혼합쌀 유통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국내산 쌀시장 역시 저가쌀이 ‘이천쌀’처럼 고가쌀로 둔갑하는 행위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수입쌀과 국내산 쌀에 동일하게 재포장을 금지하더라도 수입쌀에 불리한 여건을 조성한다며 법안 처리를 반대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법안소위에 ‘수입쌀은 국내산에 견줘 운반거리가 상대적으로 길어 포장지가 훼손될 수 있는 만큼 재포장 필요성이 크다’는 검토의견을 제출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부처협의 과정에서 ‘국내산은 소비자 선호도에 따라 다양한 포장단위로 공급할 수 있는 반면 수입쌀은 10㎏·20㎏으로만 수입되기 때문에 재포장 금지는 수입쌀에 대한 소비자 접근성을 제한하는 조치’라며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양곡을 소포장해 판매하는 소분업체들도 농식품부에 재포장 금지 법안을 막아달라는 민원을 넣고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파악한 양곡 소분업체는 880곳. 이 중 730곳은 국내산만 취급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지만 국회와 농업계는 쌀시장 전면개방으로 쌀시장 교란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쌀 수출국의 눈치만 보고 있다고 비판한다. 윤 의원은 “우리가 쌀 수출국의 포장지 훼손까지 걱정해야 하냐”며 “기존 포장지를 보관하는 조건으로 소포장을 허용하자는 양보안을 제시했지만, 정부는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선 미곡종합처리장(RPC) 관계자는 “20㎏짜리 포장비용이 2000~3000원 정도 드는데, 굳이 이걸 뜯어서 소포장하는 이유가 뭐겠냐”며 “국내 소분업체들은 RPC에서 벌크형태로 쌀을 구입하기 때문에 재포장 금지로 인한 불이익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농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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