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 쌀값 하락에 대한 정부대책이 늦어지면 미곡종합처리장(RPC)뿐만 아니라 RPC에 수탁한 쌀농가의 피해도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산지 쌀값 내림세가 지속되면서 80㎏들이 16만원대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산지 쌀값이 반등할 만한 호재가 없기 때문이다. 산지 쌀값 회복을 위해 정부가 계획했던 6만t 추가 시장격리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산지 쌀값 80㎏들이 16만원대 붕괴 우려=3월25일자 산지 쌀값은 열흘 전에 견줘 0.5%(752원) 하락한 80㎏들이 한가마당 16만12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6.9%(1만1820원) 낮고, 지난해 수확기(10~12월)에 비해 4.4%(7335원) 낮은 수준이다. 2월25일자를 제외하면, 수확기 이후 하락세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당초 2월25일 가격이 열흘 전보다 0.1% 상승하면서 쌀값이 바닥을 친 것이란 관측도 나왔지만, 단 한번의 반등에 그쳤다.
현 추세라면 이달 안에 80㎏ 기준 16만원대가 무너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복수의 농업전문가들은 “산지 쌀값을 반등시킬 만한 요소가 뚜렷하지 않다”며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16만원대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공비축 산물벼 정부이관 영향 전망 엇갈려=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수확기에 매입해 미곡종합처리장(RPC)과 벼 건조저장시설(DSC)에 보관 중이던 2014년산 공공비축 산물벼 7만5000t 중 7만3000t을 정부로 일괄 이관키로 했다. 나머지 산물벼 2000t은 보관 중이던 RPC와 DSC가 자체 인수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RPC 등이 보유한 정부 산물벼가 정부창고로 이관됨으로써, 이 물량이 단기간에 시중에 풀릴 것이란 우려가 없어졌다”며 산지 쌀값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민간농업연구기관인 GS&J 인스티튜트도 3일 <쌀가격동향 제114호>에서 “향후 단경기 시장 공급물량이 적고, 공공비축미의 시장격리 효과도 일부 기대할 수 있다”며 “공공비축 산물벼 7만3000t 정부이관으로 쌀값 하락세가 진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공공비축 산물벼 정부이관이 산지 쌀값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만만찮다. 산지 쌀값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 공공비축 산물벼가 시중에 풀리기 어려울 것이란 점이 어느 정도 예측됐기 때문이다. 또 정부 산물벼 가격이 시중가격보다 높아 판매부진에 허덕이던 RPC들이 인수할 여력이 없다는 것. 실제로 공공비축 산물벼를 보관한 전국 399개 RPC와 DSC 중 자체 인수를 희망한 곳은 단 10곳에 불과했다. 업계 관계자는 “RPC 등이 보관하던 공공비축 산물벼가 시중에 방출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대세였다”며 “산지 쌀값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공공비축미 37만t, ‘아세안+3 비상 쌀 비축제(애프터·APTERR)’ 3만t, 시장격리 쌀 18만t 등 58만t의 2014년산 쌀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대책 늦어지면 농가피해 커질 듯=정부의 대책이 늦어지면 RPC뿐만 아니라 쌀농가의 피해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RPC 경영이 어려워지면 쌀농가가 연쇄적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고, 쌀농가들이 RPC에 매취가 아닌 수탁으로 쌀을 넘긴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심창보 한국농업경영인강원도연합회 정책부회장은 “RPC가 대부분의 물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추가 시장격리 등 정부의 대책이 RPC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며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쌀농가들의 피해가 엄청나게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철원의 경우 1㎏당 매취는 1600원대, 수탁은 1200원대에 RPC에 넘기는데, RPC가 쌀을 제값에 판매하지 못하면 수탁농가는 그만큼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2009년 생산과잉 때도 농협RPC의 적자가 심해지며, 조합원인 쌀농가들이 피해를 많이 본 경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RPC에 수탁하는 비율은 20% 수준이며 매년 높아지는 추세다. 올해는 RPC와 거래하는 쌀농가 10명 중 2명은 매취 농가에 비해 적은 소득을 올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쌀농가들이 정부의 대책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6만t 추가 시장격리 서둘러야=정부가 지난해 약속한 6만t 추가 시장격리를 서둘러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쌀값 하락세가 멈추지 않아서다. 농식품부도 6만t 추가 시장격리를 반드시 추진하겠다는 뜻을 여러차례 밝힌 바 있다.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은 3월 <농민신문>과의 특별인터뷰에서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쌀 6만t 시장격리 약속을 재확인했다.
문제는 예산당국이다. 예산당국은 산지 쌀값 하락세가 주춤해진데다 농가들이 보유한 물량이 거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추가 시장격리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세금이 줄어 재정이 압박을 받자 이런저런 이유로 시장격리에 난색을 표명하는 것이다. 6만t 시장격리에는 1000억원 이상의 재정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추가 시장격리로 산지 쌀값을 올리는 것이 오히려 정부 재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태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곡물관측실장은 “단경기 가격 하락과 역계절진폭은 수확기 가격에 악영향을 미치는 게 일반적이라, 현재의 내림세가 지속되면 내년도 변동직불금 지급액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6만t 추가 시장격리에 투입하는 재정규모가 변동직불금 지급규모보다 적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농경연 농업관측센터는 6만t을 추가 시장격리하면 단경기 산지 쌀값이 수확기 대비 1.6%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