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쌀생산자협회 회원 60여명이 12일 전남 나주시 소재 aT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의 밥쌀용 쌀 수입 결정에 항의하고 있다.
국영무역 대행기관인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최근 ‘2015년분 5차 저율관세할당(TRQ) 쌀 구매 입찰공고’를 내고 밥쌀용 쌀 1만t을 수입하겠다고 밝혔다. 수출국에서 도정 후 20㎏들이와 10㎏들이 포대에 담아 9~10월에 반입하는 조건이다. 정부는 밥쌀용 수요를 봐가며 추가 도입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밥쌀용 쌀 수입 의무는 없어=정부는 지난해 9월 세계무역기구(WTO)에 쌀 관세율 513%를 담은 양허표(개방계획서) 수정안을 제출하면서 기존 의무수입물량 40만8700t을 계속 수입하되 용도제한 규정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쌀시장 전면 개방에 맞춰 수입쌀 중 밥쌀용으로 30%(12만2610t)를 배정했던 의무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밥쌀용 쌀 수입을 결정한 이유는 쌀 관세율 검증협상을 앞두고 수출국들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밥쌀용 쌀은 가공용보다 등급이 높고 가격도 10%가량 비싸다. 쌀 수출국 입장에서는 수입국 시장을 실질적으로 파고드는 효과가 있다. 513%에 이의를 제기한 5개국 중 베트남을 제외한 4개국은 우리나라에 밥쌀용 쌀을 수출했던 나라들이다. 이들은 관세율 산정 방식을 문제삼아 자신들이 기존에 수출하던 물량을 보장하라고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정부는 밥쌀용 수요를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10여년간 밥쌀용 수입쌀이 판매되면서 고정 수요층이 생겼다”며 “현재 가공용 수입쌀 재고가 42만t에 달하는 등 쌀 수입을 가공용으로만 운용하기도 어려운 여건”이라고 말했다. 농식품부의 다른 관계자는 ‘외국산 제품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내국민 대우’ 조항(제3조)과 ‘국영무역의 상업적 고려’ 조항(제17조)을 들어 “밥쌀용 쌀 수입을 전면 중단하면 국제 규정을 위반했다는 (수출국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고 밝혔다.
◆농민단체 “정부가 쌀값 하락 부채질”=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쌀생산자협회 회원 60여명은 12일 전남 나주 aT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쌀 수입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풍년으로 우리 쌀이 넘쳐나는 마당에 밥쌀용 쌀을 수입할 이유가 없다며 화살을 미국에 돌렸다. aT가 공고한 수입쌀 규격은 미국에서 주로 생산하는 중립종이다.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정부가 밥쌀용 쌀 수입을 고집하는 이유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을 위해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기 때문”이라며 “농민들이 모내기로 바쁜 틈을 타 정부가 기습적으로 쌀 수입 결정을 감행했다”고 비판했다.
농민단체들은 ‘밥쌀용 수요처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정부 설명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밥쌀용 수입쌀의 주요 판매경로였던 혼합쌀 유통이 올 7월부터 전면 중단되면서 2014년분 밥쌀용 판매가 주춤하고 있다. aT에 따르면 밥쌀용 수입쌀 1㎏ 낙찰가격은 5월 현재 1297원으로 1년 전의 1424원에 견줘 10% 가까이 떨어졌다.
이효신 쌀생산자협회장은 “지난해까지 밥쌀용으로 배정했던 12만t을 가공용으로 돌리면 그만큼 국내산 수요가 늘어나면서 쌀 수급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수입쌀 용도 제한이 폐지된 만큼 TRQ 쌀이 국민 식탁에 오르지 못하도록 의무수입쌀 전량을 가공용으로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7명도 12일 성명을 내고 정부에 밥쌀용 쌀 수입 중단을 촉구했다. 신정훈 새정치민주연합의원(전남 나주·화순)은 “정부가 쌀값 안정을 위해 7만7000t을 격리하겠다고 발표해 놓고선 뒤로는 쌀값 하락을 부채질하는 밥쌀용 쌀 수입을 모색하고 있었다”며 “쌀 수입 문제를 점검할 상임위 소집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출처: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