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을 앞두고 밭농업 중심의 농업대책을 내놨지만, 농업계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한·중 FTA가 농산물 대외개방을 완결하는 중대 사안임에도 정부 대책이 부실하게 짜였다는 게 농업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FTA 대책을 바라보는 농업계와 정부의 괴리감이 큰 이유는 무엇일까. 농민단체 관계자, 학계 전문가, 농협 조합장 등을 대상으로 정부 대책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들어봤다.
◆왜 실망하나=정부의 농업대책에 대해 농업계 인사들은 한결같이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1차 원인을 피해분석으로 돌렸다. 성효용 한국농축산연합회장은 “정부는 한·중 FTA로 인한 농업 피해가 20년 동안 1540억원에 그칠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며 “이런 분석을 기반으로 마련된 정부 대책을 수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승룡 고려대 교수는 “한 품목에서 피해가 발생하면 다른 품목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라며 “이번 피해분석에서는 이런 풍선효과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임정빈 서울대 교수는 “피해분석 모형으로 사용된 ‘연산기능 일반균형(CGE)’은 단순히 관세 하락에 따른 영향만 계측할 뿐 소비대체나 지리적 근접성과 같은 변수를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녔다”며 “이 모형을 통해 산출된 피해액만을 가지고 대책을 세웠기 때문에 농가들의 반발을 사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 대책에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이종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부장은 “밭 기계화 사업은 기존에 정부·지자체가 해온 농기계 임대사업을 조금 확장하는 수준으로, 새로운 대책이 아니다”며 “밭농업 공동경영체 육성이나 농업수입보장보험은 어느 정도 기반을 가진 대규모 농가에 도움이 될지언정 영세소농에게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김광천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FTA 피해보전직불제 현실화, 무역이득공유제 법제화와 같은 농업계 핵심 요구사항이 정부 대책에서 빠졌다”며 “농정당국이 실효성 있는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임해왔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선 방향은=정영일 농정연구센터 이사장은 “현재 중국으로부터 신선 상태의 과일과 축산물 수입은 금지돼 있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해서 유지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며 “검역 완화나 소비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전영남 전남서남부채소농협 조합장은 “우리나라 밭은 대부분 경사지고 비탈진 곳에 있어 농기계가 들어서기 어렵다”면서 “밭 기계화에 앞서 기반정비와 경지정리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 회장은 실질적인 FTA 대책으로 ▲농업인력 육성 ▲정책자금 금리 인하 ▲농가소득 및 경영안정망 구축을 제시하고 “정치권이 초당적 자세로 FTA 보완대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환 GS&J 인스티튜트 이사장은 “FTA를 맺을 때마다 내놓는 땜질식 처방이 경쟁력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FTA 자금의 대농 쏠림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며 “수혜 대상이 비교적 넓은 FTA 피해보전직불제의 발동요건을 완화해서 농가 경영을 안정시키는 핵심 장치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임 교수는 “피해품목 중심의 임기응변식 대책은 장기적으로 보면 큰 의미가 없다”며 “우리나라 FTA 체결국이 50여개국으로 늘어난 만큼 확실한 농가소득안정망을 만들어주겠다는 방향 설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부장도 “한·칠레 FTA가 발효된 2004년부터 지금까지 체결된 모든 FTA를 대상으로 전체적인 평가를 거쳐 농업 피해대책과 경쟁력 강화대책을 마련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