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값 200% 상승” “양파와 마늘가격도 각각 90%, 73% 올랐다”
가뭄이 장기화하면서 주요 농산물의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와 단순 비교를 통한 가격 상승률만을 자극적으로 제시하는 등 농촌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보도 행태가 적정선을 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농산물 값과 관련해 일부 언론들이 범하는 오류 가운데 대표적인 것 세가지를 정리한다.
① 지난해와의 단순 비교
6월12~13일 신문·방송·인터넷 등 주요 언론매체들은 가뭄 피해 상황을 전하느라 분주했다. 이들은 가뭄 여파의 사례로서 주요 농산물의 가격 상승률을 거론했다. 12일 모 언론사 기사를 시작으로 촉발된 이들 내용들은 “서민 먹거리가 되는 대표적인 채소값이 폭등해 가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식의 문제의식을 나타냈다.
보도내용의 또 다른 공통점은 농산물 값의 높고 낮음을 지난해와의 단순 비교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배추 값이 대표적인 사례다. 15일 서울 가락시장의 배추 도매가격은 10㎏들이 상품 한망(3포기)당 6549원. 지난해 6월14일(6월15일은 일요일로 경매가 없었음) 시세가 3054원이었으므로 백분율로 치면 114% 오른 셈이다. 2주일 전 시세는 더 심각(?)하다. 5월30일 가락시장 배추 도매가격은 8161원으로 1년 전(2033원)과 비교해 무려 301%가 상승했다. 이 같은 상승률만 부각하면 마치 배추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지난해 배추 시세는 어땠을까. 2013년 김장철부터 올 1월까지 배추 값은 거의 바닥 수준이었다. 특히 지난해 6월은 세월호 참사 여파로 소비부진이 지속돼 6월 10㎏ 상품 도매가격이 3750원으로 생산비를 크게 밑돌았다. 올 1월은 주산지인 전남 해남·진도 등지의 기상 호조로 상품 도매가격이 2920원에 머물러 가격이 낮았던 지난해 6월에 비해 830원이 더 떨어졌다.
② 최근의 수급 맥락 설명 누락
양파와 감자도 마찬가지다. 15일 가락시장의 양파 도매가격은 상품 1㎏당 870원으로 1년 전(406원)보다 114% 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가격은 직전 3개년 중에 가장 낮았다. 이 가격은 2011년 614원, 2012년 913원, 2013년 1061원 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어서 ‘양파 산성’(판로를 찾지 못한 양파 망포장품을 산지 작업현장에 길고 높게 쌓아 둔 모습을 빗댄 표현)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감자 역시 15일 가락시장 도매가격이 20㎏들이 상품 한상자당 2만5764원으로 지난해(1만6190원)에 견줘 59% 상승했다. 하지만 감자의 지난해 가격은 직전 3개년(2011~2013년) 평균값인 2만1654원보다도 5464원(25%)이나 낮았다.
마늘 또한 다르지 않다. 15일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난지>햇마늘의 도매가격은 3㎏들이 상품 한망당 1만1500원으로 지난해 이맘때(6400원)보다 79%가 올랐다. 상승률만 보면 크게 오른 것 같지만 이는 평년 수준을 겨우 회복한 수치일 뿐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햇마늘의 평년 6월 도매가격은 1㎏당 3506원으로 3㎏으로 환산하면 1만518원이 된다.
최병옥 농경연 연구위원은 8일 <KREI논단>에 발표한 ‘최근 배추가격 상승과 언론보도에 관한 소회’에서 “이런 식의 언론보도는 채소류 가격 이면에 감춰진 기저효과, 기상변화, 소비위축 등의 중요한 모습은 외면하고 현 상황을 스포츠 경기처럼 중계방송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서 “또한 농산물 가격은 항상 낮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소비자 인식을 확산시켜 배추를 비롯한 채소류 산업의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③ 생산량 감소, 생산원가 상승에 따른 실제 수취가격 하락은 도외시
언론보도들의 오류 중 대표적인 것은 가뭄에 따른 수확량 감소와 생산원가 상승을 도외시한 데 있다. 가격이 강보합세라고 하더라도 농가가 실제 손에 쥐는 건 많지 않다는 것을 외면한다는 얘기다. 김용운 ㈜중앙청과 이사는 “감자의 경우 평년 수확량의 40~60%로 줄어든 것으로 파악되고 ‘왕왕’과 ‘왕특’ 등 높은 값에 팔리는 굵은 것은 드물고 그 이하 품위 비중이 커졌다”고 말했다.
품위간 가격 차가 벌어지면서 특·상품 시세가 상대적으로 크게 오르는 경향이 있는 만큼, 실제 농가 수취가격은 ‘상품’ 기준으로 표현된 농산물 값보다 낮을 수 있다는 뜻이다.
최영헌 한국청과㈜ 본부장은 “양파는 굵은 것의 경우 1㎏당 850~900원 선에서 거래되는 반면 알이 작은 것들은 시세가 거의 없다”면서 “한평(3.3㎡)당 수확량이 예년엔 20㎏들이 1~1.5망이었지만 올해는 가뭄으로 1망도 채 안 돼 농가들이 이익을 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광형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가뭄 탓에 배추 잎이 마르고 제대로 비대하지 못하고 있어 주산지에선 관정을 뚫고 전기 모터를 돌려 물을 퍼올리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전한 뒤, “물값만으로도 생산비가 많이 오른 상황이라 배추 값이 올라도 이익이 크지 않을 뿐더러, 품을 추가로 들인 만큼 시세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데 일부 언론들은 이를 눈감고 있는 것 같아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