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뭄이 반년 넘게 지속되면서 농심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여파로 농산물 소비와 농촌체험관광이 동반 위축되는 등 농업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다 중국·베트남·뉴질랜드와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시장개방은 확대일로에 있으나 국내 대책은 농업인들의 기대에 크게 못미쳐 실망과 걱정이 농촌을 뒤덮고 있다.
◆농업·농촌 위협하는 자연재해=지긋지긋했던 구제역·조류인플루엔자(AI)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가뭄이 농업과 농촌을 위협하고 있다. 가뭄 발생 면적은 갈수록 늘어 16일 현재 6583㏊에 달한다. 인천·경기·강원·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논 물마름(2699㏊) 및 밭작물 시듦(3884㏊)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강원 횡성·평창지역 고랭지 무·배추의 경우 파종조차 못한 면적이 6월 상순 기준 910㏊(파종 계획 면적의 28%)에 달하고, 파종을 한 곳에서도 시듦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식수 부족은 농촌 주민들의 생활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인천 옹진군 7개면 중 광역상수도가 설치된 영흥면을 제외한 6개면은 5월부터 식수가 고갈돼 육지에서 병에 넣은 수돗물이 공수되고 있다.
가뭄으로 인한 작황 부진으로 일부 농산물 값이 오르고는 있으나 생산량 감소와 소비부진으로 농가들이 실제 수취하는 소득은 급감, 농가 가계 주름살도 늘고 있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은 일시적인 농산물 가격 상승에만 초점을 맞춰 ‘금값 배추’ 보도를 앞다퉈 쏟아내 농업인들의 마음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13~14일에는 경북과 전북 일대에 우박까지 내렸다. 이 우박으로 경북 영주 570여㏊, 안동 40여㏊, 상주 10여㏊의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다. 전북 김제와 고창 지역은 수확을 앞둔 복분자와 매실 등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엎친 데 덮친 메르스=메르스는 농촌체험관광을 완전히 마비시키고 농산물 소비를 급속히 냉각시키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전국 840개의 농촌체험마을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면 할수록 예약취소율은 높아지고 있다. 최근 조사결과 예약의 90%(방문객 기준) 정도가 취소됐다. 농촌진흥청이 주관하는 농촌교육농장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국 477곳 가운데 56곳을 조사한 결과 6월 셋째주 예약의 78%가 취소됐다.
마을 전체가 격리된 전북 순창군 장덕마을은 특산물인 복분자·블루베리의 주문이 대량으로 취소되는 피해를 보고 있고, 도시민들의 여행·회식 등이 크게 줄면서 농산물 소비부진도 가시화되고 있다. 농촌 일손 부족도 문제다. 격리마을을 중심으로 일손 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행정자치부와 농협 등은 18일부터 전북 순창지역 등 격리마을에서 일손돕기를 실시하고 농산물 구매운동 등을 벌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격리마을이 아닌 곳도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메르스 감염 우려로 대학생 농활이 대부분 취소됐고, 정기적으로 농촌일손을 돕던 기업체나 단체의 일손지원도 모두 중단된 탓이다.
◆관련 대책 강화해야=농업·농촌이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하면서 관련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발등의 불인 가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하고 예산 집행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농식품부는 최근 625억원을 가뭄 관련 예산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농식품부는 양수기·급수차 등을 동원해 하루 평균 250㏊의 논과 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로 했다. 저수지 준설로 저수지의 저수 용량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한다. 농작물 고사 등 피해를 본 농가에는 대파대(1㏊당 220만원)와 생계 지원비(농가당 91만원)를 지원하고 파종·정식 한계기(6월25일~7월 초)를 넘은 벼·옥수수·콩 등은 조·메밀·수수·기장 등으로 대체 파종을 추진하기로 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전담팀(TF)을 구성해 ‘가뭄대응종합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그러나 16일 현재 농식품부의 가뭄 관련 예산 집행 실적은 지자체 지원 61억원, 저수지 준설 30억원 등 91억원에 불과해 예산집행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은 16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긴급 용수공급 및 저수지 준설, 재해복구 지원 등과 같은 단기 대책과 함께 10월까지 중장기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