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영동 학산면의 블루베리 농가 양종배씨가 메르스 영향으로 제때 일손을 구하지 못해 알이 물러버려 수확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며 수확을 앞둔 블루베리를 살펴보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농촌이 신음하고 있다. 농업인들의 속은 타다 못해 화(火)가 쌓여 터질 지경이다. 최악의 가뭄과 메르스, 여기에다 일손부족까지 겹친 ‘삼중고’가 농촌과 농가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고추와 옥수수 등 밭작물의 잎은 바짝 말라 배배 꼬여가고 있고, 마늘은 생육이 멈춰 대추알 크기로 자란 탓에 팔 곳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메르스 확산에 농산물 소비는 꽁꽁 얼어버렸다. 블루베리와 수박·마늘 등이 본격 수확에 들어갔지만 일손을 제때 구하지 못한 일부 농가는 일정량 수확을 포기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타는 들녘, 멍드는 농심=충북 단양 가곡면에서 고추와 콩·수수를 재배하고 있는 지승영씨(79)는 농협과 군에서 제공하는 농업용수로 근근히 밭에 물을 대고 있다. 하지만 가뭄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다. 물기가 다 증발돼 버려 땅속을 뒤집어 봐도 흙먼지만 날릴 뿐이다. 생기를 잃은 고춧잎은 고사되기를 기다리듯 땅을 향해 축 쳐져 있다. 수수는 심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지씨는 “가뭄 끝에도 먹을 것은 있다고 하는데, 이 상태로는 올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겠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수확이 한창인 이 지역 마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김성환 단양소백농협 상무는 “농협과 농가들이 마늘밭에 열심히 물을 퍼나르고는 있지만 물을 머금지 못하다 보니 마늘대가 모두 누렇게 변해 버렸다”면서 “수확해도 자라다 만 것들이 대부분이라 내다팔기도 민망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메르스 한방에 농촌경제 휘청=“각종 행사가 취소되고, 소비자들이 무섭다고 밖을 나오지 않는데 농산물 소비가 될 리가 있겠습니까.” 메르스 한방에 수박 출하가 한창인 충북 진천과 음성지역 농가들은 녹아웃이 됐다.
밤낮으로 가뭄과 싸워가며 애지중지 키워낸 수박을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출하했지만 시장에는 찬바람만 몰아치고 있다. 이민우 진천 이월농협 경제상무는 “예년 이맘때 같으면 하루 발주물량이 5t차로 5대 이상은 됐는데 지금은 2~3대로 절반이나 줄었다”고 말했다.
블루베리 주산지인 충북 영동군 학산면의 농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박광수 학산농협 과장은 “시장조사차 서울과 인천, 수원 등지의 대형할인매장을 자주 돌아다녀 봤지만 마스크를 쓴 소비자 몇명만 보일 뿐 텅텅 비어 있는 실정이었다”면서 “블루베리는 1㎏당 2만5000원 이상은 받아야 하는데 소비지에서 팔리지 않으니 2만원 받기도 벅찬 상황”이라고 말했다.
충북에서 메르스 환자가 첫 발생, 사망한 옥천지역의 농가와 주민들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충북 남부권 최대 가축시장인 옥천가축시장은 이미 문을 닫았으며, 시내 오일장도 폐쇄돼 수확기를 맞은 농산물을 거둘 사람도 거둬도 팔 곳을 잃었다.
◆부족한 일손난을 메르스가 결정타=충북 영동에서 9900㎡(약 3000평) 규모의 포도와 3960㎡(약 1200평) 규모의 시설 블루베리 농사를 짓고 있는 양종배씨(57·학산면)는 요즘 전화기를 붙잡고 일손 좀 보내 달라고 읍소하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오랜 가뭄이지만 관정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양씨는 “밭작물 수확은 포기한 상태지만 블부베리와 포도는 그런대로 생육은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블루베리 수확기인 요즘 하루 4명의 일손을 동원해야 하는데 일손을 구하기도 어려운데다 최근에는 인건비까지 크게 올라 걱정”이라며 “인근 전북 무주와 영동읍에서 사람을 쓰는데, 5000원의 웃돈을 줘도 데려오기 어려운 때가 많다”고 말했다.
메르스 탓에 군부대나 군청직원, 도시주부들의 농촌일손돕기 봉사활동 소식이 뚝 끊긴 것도 영향이 크다는 게 양씨의 설명이다.
일손을 제때 못 구해 대과로 커버려 물러버린 포도와 블루베리의 수확을 포기하는 비율이 현재 10%에 달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양씨는 내년에는 3300㎡(약 1000평)가량의 포도밭을 폐원할 계획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지역 농가들의 사정이 양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