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이 무섭지 않다”는 권숙찬씨는 과감한 작목전환으로 성공 농업인의 반열에 올라섰다.
권씨가 농사일에 뛰어든 건 28년 전. 헐값에 얻은 용인 모현의 시멘트 땅을 맨손으로 고르며 시작한 농사일은 힘들었지만 그는 올곧게 상추농사에 매달렸다. 천성적인 부지런함에 노하우가 쌓이면서 농사는 대박이 났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곧 특수채소로 눈을 돌렸다. 웰빙바람이 불면서 특수채소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덕이다.
그는 케일·겨자채·교나·썸머·비타민채까지 48가지가 넘는 채소를 기르며 한때는 한 해 9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용인의 웬만한 대형매장에 그의 상품이 안들어간 곳이 없을 정도였고, 직접 운영하는 매장만 한때 7군데였다.
하지만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작목전환를 시도했다.
“어느 날 보니 특수채소가 전국에 다 퍼졌더라고요. 꼭지에 올라왔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과감하게 특수채소를 접었죠.”
모현면이 개발되면서 농사지을 땅이 없어지자 그는 영농지를 이천으로 옮기면서 베이비채소로 눈을 돌렸다. 2007년의 일이다. 그의 선택은 주효했다. 베이비채소는 1㎏당 1만원을 호가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에게 또 한번 고비가 찾아온다. 지난 2014년 초부터 베이비채소 값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해 1㎏당 4000원까지 내려간 것. 그는 작년 9월, 청경채와 얼갈이·쑥갓으로 또 한번의 변신을 꾀한다. 이런 그의 두 번째 도전도 보기 좋게 성공해 전국 경매상들이 직접 찾아와 상품을 실어갈 정도다.
이런 노력으로 그는 지금 하우스 60동에서 1년 내내 작물을 생산하며 5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다. 물론 어려움도 없지 않았다. 2013년 7월 폭우로 하우스, 농기구 등이 전부 떠내려가 3억원이 넘는 피해를 입은 것.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됐지만, 그가 손에 쥔 보상금은 700만원이 고작이었다.
“처음으로 농사일에 회의가 일었지만 그동안 갈고닦은 기술이 아까워 땅을 떠날 수 없었죠. 시설채소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는 다시 일어났다. 그의 농장에는 지금도 12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지만, 그는 밭 갈고 씨 뿌리는 일만큼은 남의 손에 맡기지 않는다. 화학비료를 적게 써 연작피해를 줄이고, 지력을 높이기 위해 칡· 미역·산양삼 등을 넣어 자신만의 액비도 만든다.
“이젠 농업인도 작물만 잘 키우면 되는 시대는 지났어요. 날씨부터 세상 돌아가는 일까지 모든 일에 관심을 가져야하죠. 농업인도 자기 농장에서 만큼은 최고 경영인이거든요.”
칠순을 눈앞에 둔 나이에도 “도전이 무섭지 않다”는 권숙찬씨. 그는 누가 뭐래도 꿈꾸는 청년 농업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