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태풍 ‘찬홈’으로 인해 전남지역에는 강풍과 함께 구례 203㎜를 최고로 순천 157㎜, 장흥 155㎜, 보성 140㎜ 등 평균 103㎜의 비가 내렸다. 지난 봄 착과불량 피해 이후 겨우 남은 배마저 이번 태풍으로 인해 우수수 떨어져 바닥을 뒹굴고 있는 순천지역 배 과수원.
13일 오전 배 주산지인 전남 순천시 낙안면 일대. 제9호 태풍 ‘찬홈’이 휩쓸고 지나간 배밭은 참혹했다. 배나무 밑은 배를 싼 하얀 봉지가 강풍에 떨어져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배밭을 둘러보러 나온 농가들은 “태풍이 소형이라 간접적인 영향만 줄 것이라고 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큰 피해를 주고 갔다”며 하늘을 원망했다.
1만3200㎡(4000평)의 배밭에서 낙과 피해를 당한 송문용씨(52·이곡리)는 “지난번 저온피해로 배가 예년에 비해 절반 정도밖에 안 달렸는데, 이나마도 이번 태풍에 70% 정도가 떨어져 버렸다”면서 “게다가 남아 있는 30% 정도의 배도 ‘못난이배(기형과)’와 꼭지가 부러진 것 등을 빼면 겨우 10%나 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지었다.
이곡리에서 1만9800㎡(6000평)의 배를 재배하는 안현철씨(39)는 지난해 8월 제12호 태풍 ‘나크리’에 이어 이번에 또 피해를 당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안씨는 “이번 태풍에 낙과피해가 80% 정도 발생했다”면서 “태풍이라는 불가항력적인 피해로 그동안 들인 공력이 한순간에 헛수고가 됐다”고 울먹였다.
낙안면 일대에서는 250농가가 200㏊의 면적에서 배를 재배하고 있는데, 이번 태풍으로 이 지역 농가 40~50%가 60~80%의 낙과피해를 입었다. 나머지 농가들도 20~30%의 낙과피해가 발생했다. 이 지역에서 유독 태풍피해가 심했던 것은 강한 바람이 돌풍으로 변해 농작물을 휩쓸고 갔기 때문이다.
강풍으로 인한 피해는 비닐하우스도 크게 망가뜨렸다.
순천지역에서는 109동(13일 현재 잠정 집계)의 비닐하우스에서 비닐이 찢겨 나가고, 이 가운데 9동은 철골조까지 거의 파손됐다.
1980㎡(600평)의 비닐하우스가 강풍에 파손된 남길태씨(54·〃 교촌리)는 “비닐하우스가 내재해형이 아니어서 항상 불안불안 했는데, 이번 태풍을 못 견디고 무너졌다”면서 “지난 7년 동안 아무 피해가 없어서 앞으로 7년 정도 더 사용하고 내재해형으로 튼튼하게 지으려 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날 순천지역 태풍피해 현장에는 이낙연 전남도지사와 조충훈 순천시장, 조덕훈 NH농협은행 순천시지부장, 강성채 순천농협 조합장 등이 농가를 방문해 위로했다.
이 자리에서 농가들은 이 지사와 조 시장에게 “표준규격(내재해형)이 아닌 비닐하우스도 기존 시설은 한시적으로 보험료율을 높여서라도 재해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하고, 태풍피해 최소화를 위해 방풍망시설 지원을 확대해 달라”고 건의했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재해가 일상화돼 있으므로 사전 대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재해보험 가입을 지원하고, 방풍망 등 재해예방 시설 등을 행정·재정적으로 뒷받침해 농가가 재해로 인해 영농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태풍으로 전남에서는 1명이 사망하고 사과·배 등 110㏊에서 낙과피해가 발생했다. 또 많은 비로 인해 해남·진도·보성·화순 등에서 농경지 370㏊가 침수됐다. 고추·참깨·옥수수 등 밭작물도 22㏊에서 쓰러지는 피해가 발생했다.
한편 이번 태풍 찬홈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522㏊로 잠정 집계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태풍 찬홈으로 과수 낙과 124㏊, 농경지 침수 375㏊, 밭작물 도복 22㏊, 비닐하우스 파손 1㏊ 등 522㏊의 농경지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됐다고 13일 밝혔다.
하지만 실제 농작물 피해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대부분의 농가가 비가 그친 후 피해상황을 행정기관에 신고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태풍으로 인한 비가 완전히 그치면 전남지역을 중심으로 피해규모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농식품부도 과수 낙과 피해율과 추가피해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피해조사와 손해평가를 최대한 서둘러 재해대책비와 재해보험금이 신속히 지급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과수 낙과는 피해조사에 2주, 보상까지 한달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