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 횡성군 둔내면에서 고랭지백합을 재배하는 전재경씨(오른쪽)와 권영규 aT 화훼공판장 절화부장이 15일 일본의 오봉절을 맞아 수출 예정인 백합의 생육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7월30일 강원 횡성군 둔내면. 해발 500m 고지인 이곳에서 9900㎡(3000평)에 고랭지백합을 재배하는 전재경씨(51)는 해마다 50만송이의 백합을 출하한다. 전 씨는 “일본 엔화 시세가 좋을 때는 30만송이 정도를 수출했는데 작년부터는 10만송이 정도로 수출량이 줄었다”며 “일본 수출이 부진하자 몇년 사이 횡성군에서 백합을 재배하는 농가가 40여농가에서 10여농가로 줄었다”고 말했다.
일본 엔화 약세에 따른 여파가 여름 고랭지백합 주산지인 강원도를 강타하고 있다. 2013년 시작된 아베 정권의 엔저정책으로 인해 일본 수출이 부진하면서 여름 고랭지백합 재배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소비위축에 엔화 약세까지 겹치면서 가격이 하락하자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백합은 한겨울을 제외하고 연중 생산되는데 날씨가 무더운 여름에는 강원 인제·횡성 등 고랭지에서 재배된다. 여름철 강원도에서 생산되는 고랭지백합은 연간 출하되는 백합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무더운 날씨에 일반 농경지에서 재배하면 꽃피는 시기가 빨라지고 품위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여름 고랭지백합은 주로 일본 수출용으로 생산된다. 7월 말부터 출하를 시작해 8월15일 오봉절(조상을 기리는 일본의 최대 명절)과 9월23일 추분절을 겨냥해 수출된다. 참배용으로 쓰이기 때문에 재배하는 품종도 백색인 <시베리아> <카사블랑카> 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고랭지백합은 일본 수출을 바라보고 재배하지만 몇년 동안 수출량은 크게 줄었다. 관세청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일본에 수출하는 백합은 2012년 2722t에서 2014년 1562t으로 42.6%나 감소했다. 수출액도 같은 기간 3000만달러(한화 330억원)에서 1200만달러(한화 132억원)로 급락했다.
화훼수출업체 우리인터네셔널 김재서 대표는 “일본 수출이 어려워지자 도산하는 업체가 많아지면서 지금은 전국에 수출업체가 3개밖에 남지 않았다”며“중국은 수출절차 지연 등 비관세장벽이 심하고 러시아는 소비시장이 크지 않아 수출 다변화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엔화 약세로 수출이 활기를 잃자 백합 생산량도 줄고 있다. 이는 국내 도매시장 출하량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올 7월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화훼공판장에 출하된 백합은 5만3929단(1단은 5송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만5863단보다 2만단 이상 감소했다.
하지만 평균시세는 1단에 2200원에서 2000원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오수태 aT 화훼공판장 경매실장은 “7월에는 휴가철이 시작되기 때문에 소비가 부진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출하량이 줄어도 시세가 평년보다 떨어진다는 것은 화훼시장 전체가 침체기를 맞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백합 생산자단체들은 침체된 백합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국산 품종개발과 공영도매시장인 aT 화훼공판장의 수집·분산능력 강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명식 한국백합생산자중앙연합회장은 “정부에서 골든시드프로젝트(GSP)를 통해 종자개발을 시도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사용할 만한 품종이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며 “수입 구근 구매비용이 꽃가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국산 품종개발을 서둘러 농가 생산비를 낮춰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20%에 불과한 aT 화훼공판장의 경매능력을 키워야 공영도매시장으로서 가격지지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