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개정안에 대한 기탁서 제출이 늦어지면서 애꿎은 농업계가 피해를 보고 있다.
개정안은 학교급식에 국산 농산물을 우선 사용할 수 있는 국제법적 근거인데, 기탁 지연으로 아직 국내에서는 발효가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정된 협정은 협정 가입국 3분의 2가 국내 절차를 거쳐 기탁서를 WTO에 기탁하면 기탁한 날로부터 30일이 지나 발효된다.
1993년 제정된 WTO 정부조달협정은 무려 14년간의 협상 끝에 2012년 3월30일 WTO 정부조달위원회에서 개정됐다. 이에 따라 국산 농산물을 학교급식에 우선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단 정부 조달 방식으로 급식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에 한해서다. 기존에는 정부 조달의 경우에도 비차별 원칙이 적용돼 국내산 농산물을 우대할 수 없었다. 정부는 국내 절차를 위해 2013년 11월5일 국무회의에서 개정안을 의결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11월15일 이를 재가했다. 하지만 야당이 제동을 걸었다. 개정안은 대통령의 재가가 아닌 국회 비준 사항이며 철도 민영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문제 삼았다.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127명은 그 해 12월26일 “정부조달협정 개정안이 국회 비준 동의를 거치지 않고 재가된 데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취하지 않은 것)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이후 헌법재판소는 이를 제대로 심리하지 않고 있다. 개정안은 통합진보당 사건 등으로 인해 심리 우선 순위에서 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현재 심리 중이지만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농업계와 크게 관련이 없는 문제로 인해 농업계가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뿐만 아니라 정부·국회 모두 관련 국내 절차를 조속히 처리해 국산 농산물이 학교급식에 우선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새누리당의 황영철·윤명희·홍문표 의원은 학교급식 식재료로 국산 농산물을 우선 사용토록 하는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한 상태다. 하지만 개정안이 먼저 발효돼야 이러한 법 개정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기탁서를 제출한 국가의 경우 지난해 4월6일 이미 개정안이 발효됐다”며 “우리나라도 국내 절차를 마무리하고 기탁만 하면 바로 발효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