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인천 강화군 삼산면 상리 김진복씨가 손관정마저 없어 극심한 가뭄 끝에 말라버린 들녘의 벼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10일 인천 강화군 삼산면. 상리 들녘에서 만난 조일환씨(55)는 “논에 물이 없어 벼가 말라 갈라지다 못해 꼬꾸라지고 있다”며 “농업인이 아니면 이 마음을 누가 알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씨의 말대로 들녘 곳곳에는 한창 익어가야 할 벼들이 벌겋게 타들어가는 모습이 멀리서도 눈에 들어왔다. 촉촉해야 할 논바닥은 쩍쩍 갈라져 있었고, 물이 부족한 벼는 잎이 마르고 여기저기 쭉정이 투성이었다.
◆가뭄과의 전쟁, 석달째 진행 중=6월 초부터 손관정을 뚫으며 가뭄과 사투를 벌여온 삼산면 농가들의 물과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여름 내내 비 한방울 내리지 않은데다 섬이라는 지역 특수성으로 인해 최후의 방책으로 농가들이 팀을 이뤄 뚫어놓은 손관정마저 바싹 말라버렸다. 백로도 지나고 황금물결로 넘실거려야 할 들녘은 군데군데 마치 불에 데인 것마냥 벌겋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전날까지 손관정 뚫는 작업을 했다는 김진복씨(55·상리)는 “그나마 손관정이라도 뚫어 물을 조금이라도 공급한 논은 70% 정도 수확을 기대할 수 있지만 일손이 없어 관정조차 뚫지 못한 어르신들의 벼는 다 말라 10%도 건지지 못하는 곳도 있다”고 토로했다.
13㏊(약 4만평) 규모의 벼농사를 짓는 김씨는 마을 가까이 있는 논에는 지하의 돌 때문에 손관정을 팔 수가 없어 멀리 있는 논둑에 관정을 뚫고 1300m 길이로 호스를 이어 물을 댄다. 그는 “조만간 비 소식이 있다지만 중생종 벼는 제대로 된 수확을 기대하기 어렵고 만생종만이라도 건지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가들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손관정을 팠는지 숟가락질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물이라도 많이 나온다면 힘이 나겠지만, 손관정도 많이 파다 보니 물이 줄어 처음 팔 때보다 2~3m 깊은 14~15m는 파야 해 힘은 힘대로 든다고 했다.
◆면세유 바닥나고 관정에는 짠물만=그나마 손관정을 뚫어 물이 나오고 양수기를 돌릴 수 있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들녘에 전기를 끌어올 수 없어 모두 양수기를 사용하는데 올해 쓸 면세유도 모두 동이 났다.
여기다 한국농어촌공사에서 비상대책으로 뚫은 중·대형 관정은 염도가 높아 농업용수로는 사용할 수도 없다. 결국 농가들은 손관정밖에 대안이 없어 석달째 손관정을 뚫는 고된 작업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농가들은 “애써 손관정을 뚫어놓고도 면세유가 없어 마음대로 가동을 못 하고 있다”며 “양수기라도 충분히 돌릴 수 있게 당장 면세유 공급이라도 늘려줬으면 한다”고 하소연했다.
김씨의 경우 3966㎡(1200평) 규모의 논에 양수기를 24시간 돌리려면 40ℓ 이상의 휘발유가 필요하다고 한다. 면세유를 공급받지 못하면 기름값만 하루 6만원이다. 추석 이후 수확하는 만생종 벼에는 최소한 10일 이상 물을 공급해야 하기에 기름값만도 60만원이 들어간다는 설명이다.
김씨는 “제때 물을 주지 않으면 만생종 벼도 정상적인 수확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게다가 농가들과 함께 피해가 심한 논에 농작물재해보험을 신청했지만 조건이 까다로워 보상도 제대로 받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내년 농사가 더 걱정=지금 가뭄도 그렇지만 내년 농사가 더욱 걱정이다.
조충희씨(60)는 “40평생 농사를 지었지만 올해처럼 비다운 비가 한번도 내리지 않은 적은 없었다”며 “농가마다 저수지에 물이 전혀 없으니 내년 농사가 더 힘들 거라고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한국농어촌공사 강화지사 삼산지소에 따르면 지난해 강수량이 650㎜인 데 반해 올해는 10일 기준 누적 강수량이 350㎜에 그치고 있다. 앞으로 충분한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내년 농사 역시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내가면·하점면·양사면 일부 지역의 상황도 삼산면과 다르지 않다. 주민들은 평년보다 수확량이 줄어드는 것도 걱정이지만 내년 농사 계획에 더 촉각을 세우고 있다.
농어촌공사 강화지사 강서지소에 따르면 현재 고려저수지의 저수율은 1.5%밖에 안 되고 하점저수지는 아예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강서지소 관계자는 “저수율이 50%는 돼야 내년 5월 초까지 모내기라도 할 수 있는데 앞으로 비가 넉넉하게 오지 않으면 고려저수지 관내는 못자리도 힘들 것”이라고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