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 22일 <신고>배 10개들이(통상 7.5㎏ 정도) 소매가격은 2만8860원(aT 가격정보 기준)이었다. 도시 직장인 대여섯명이 모여 함께 마시는 브랜드 커피(한잔당 4000~7000원) 가격이면 <신고>배 한상자를 살 수 있었다.
추석·설 등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정부의 ‘추석맞이 농축산물 물가잡기’가 올해도 반복됐다. 특히 올해는 수확시기와 추석연휴가 시차를 보이면서 9월 한달 내내 농축산물 특판행사가 벌어졌다. 이를 통해 과일과 채소류는 최대 30%, 축산물은 50%까지 할인판매됐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농업인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좋은 가격을 기대하며 한해 농사를 짓고 있지만, 정부는 물가안정의 대표 품목으로 농산물을 주목하고 명절은 물론 연중 가격통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이와 다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1일 발표한 ‘2015 농림축산식품 주요통계’에 따르면 2014년 국민 1인당 농산물 연간 소비량은 사과 9.4㎏, 배 5.5㎏, 포도 6.5㎏, 무 25.8㎏, 배추 58.5㎏, 마늘 7.9㎏, 고추 5.1㎏, 양파 31.2㎏이다.
이를 소매가격(aT 가격정보 22일 기준)으로 환산하면 사과는 4만원, 배 2만1000원, 포도 2만7000원, 무 3만8000원, 배추 5만2000원, 마늘 7만5000원, 고추는 4만2000원 선이다. 최근 가격이 올라 농식품부가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 양파의 국민 1인당 연간 소비액 역시 6만6000원 선에 불과했다. 평년가격(1㎏당 1377원)을 적용하면 4만2900원대로 떨어진다. 이는 우리 국민 한명이 주요 과일과 채소 구입을 위해 일년 동안 쓰는 돈이 36만원대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반면 국내 브랜드 커피 한잔 값은 최소 3000원에서 많게는 7000원까지 하고 있다. 농식품부가 지난 1월 밝힌 ‘국내 커피시장 1조6000억원’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국민 한명당 1주일에 12.3회(커피믹스 포함)의 커피를 마시고 있다. 배추김치(11.8회)와 쌀밥(7회)보다 더 커피를 찾는 것이다. 도시 직장인의 경우 커피 전문점을 찾는 경우가 많아 커피 소비를 위한 지출액이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스마트폰 이용료도 이에 못지 않다. 월정액 5만2000원짜리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 도시 직장인 이모씨의 경우 매월 통신비로만 8만∼9만원을 쓰고 있다. 통신요금 5만2000원에 단말기 할부금 2만8360원 등을 포함한 금액이다. 연간으로 따져도 100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이처럼 주요 농산물의 연간 구입액이 커피값이나 스마트폰 통신료의 몇개월치에 불과하지만 농산물이 ‘물가 불안의 주범’으로 둔갑되는 것은 ‘정보 왜곡을 통한 여론몰이’의 결과라는 지적이다.
농산물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적다. 통계청이 5년 주기로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 품목별 가중치’를 보면 전체 지수 1000점(2012년 기준)에서 사과는 3.0, 배 1.0, 무 0.8, 배추 1.7, 양파 0.8에 불과하다. 반면 스마트폰 이용료는 33.9, 휘발유 31.2, 전기료 20.5, 치킨 4.0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이 7월 발표한 ‘소비자의 배추 소비행태와 가격변동에 대한 인식’을 보면 채소·과실 가격이 10%씩 상승 시 전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0.019%와 0.007%였다.
농협중앙회의 ‘농산물 가격 측면의 농가경제 추이’ 자료(6월 발표)를 보더라도 지난 10년(2005~2014년)간 소비자물가가 26.6% 올랐는데 여기에 미친 영향력이 서비스 47.6%, 공산품 36.9%인 반면 농산물은 3.8%에 그쳤다.
이에 따라 정부의 물가정책에서 계절성이 강하고 기후조건에 따라 가격 등락폭이 큰 농산물의 비중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올해처럼 가격이 폭락했던 지난해와 비교해 여론몰이로 가격을 통제하려는 정책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유춘권 농협 미래전략연구소 경제통상연구팀장은 “지난 10년간 농가의 농산물 판매가격은 하락한 반면 생산비는 늘어 농업소득이 10년 전보다 오히려 떨어졌다”며 “그럼에도 국내 농산물의 품질과 안전성 확보는 높아져 소비자들에게 그 효과가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도시가구의 소비지출 중에서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낮아 날씨나 계절성 때문이 농산물 가격이 일시 상승한다고 해도 곧 떨어져 물가가 오른다고 볼 수 없다”며 “오히려 농산물 가격을 꾸준히 안정시켜 농업인이 지속적으로 농업에 종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