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격적인 토마토 정식시기를 앞두고 외국인근로자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는 부여의 한 농업인이 하우스에서 로터리 작업을 하고 있다.
충남 부여군 세도면에서 9900㎡(3000평) 규모의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양의상씨(57)가 전하는 지역 분위기다.
방울·대추토마토 주산지인 세도지역은 아주심기에 들어가는 10월부터 수확이 끝나는 내년 6월까지가 영농철이다. 고령의 할머니 일부를 제외하면 외국인근로자가 영농인력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요즘은 이들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돈 좇아 떠나는 외국인근로자=1만9800㎡(6000평) 규모의 하우스에 토마토농사를 짓는 이상배씨(52·부여)가 5월 겪은 황당한 일이다. 이씨는 1월 초 몇년 일하겠다며 찾아온 외국인근로자 6명을 고용했다고 한다.
“월급을 주고 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짐을 챙겨 연기처럼 사라졌어요. 말 한마디 없이 감쪽같이.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알아보니 돈을 더 준다는 양계장으로 갈아탔더라고요.”
농가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사정은 이렇다.
한 대형 닭고기 업체가 위치한 전북 익산과 가까운 부여·논산은 육계 계열화 농가가 많다. 이들 농가는 보통 밤 시간을 이용해 잠을 자는 닭을 잡아 차량에 옮겨 싣는다. 일이 힘들고 어려워 인력난이 발생하면서 납품 대행업체들이 외국인근로자를 양계장에 투입하고 있는 것이다.
양씨는 “이해관계가 딱 맞는 거지. 대행업체는 인력 확보가 쉽고 외국인근로자는 하룻밤에 10만원 정도 벌면서 낮에는 잠을 자거나 쉴 수 있으니까. 농장에서 일해봐야 부부 소득이 대략 8만원 정도니 쉽게 넘어가는 거지”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돈 버는 게 목적인 외국인근로자의 입장에서 보면 양계장 작업이 입맛에 딱 떨어지는 일인 것이다.
◆외국인근로자가 ‘갑’=부여지역의 경우 농장에서 일하는 외국인근로자 가운데 합법이 30%, 불법이 70%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외국인근로자를 배정받기 힘들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불법체류자라도 고용하는 상황이다.
최근 강원 춘천지법(형사 3단독)은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 6명을 고용한 혐의(출입국관리법 위반)로 기소된 이모씨(52)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법원은 농촌 실정을 감안해 벌금을 7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낮췄다고 설명했다.
이 소식을 들은 한 농가는 “오죽했으면 불법체류자를 썼겠냐”면서 “요즘은 오히려 외국인근로자 눈치를 봐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불법 신분인 경우 일할 곳을 알선해 주는 브로커나 자신들끼리 연락을 통해 돈을 더 주는 곳을 찾아 수시로 거처를 옮길 가능성이 높아 바쁜 수확철에 낭패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합법이라고 하더라도 취업활동 기간 내(최대 3년)에 3회까지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는 조항을 들어 일을 그만두겠다고 요청하는 일도 허다하다.
또 다른 농가는 “외국인근로자가 옮기겠다는 맘을 먹으면 확 달라진다. 일을 게을리하고 속도를 안 낸다. 결국 도장 찍어줘서 내보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즉 외국인근로자의 입김이 세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홍기씨(50·부여 세도)는 “9900㎡ 규모의 토마토농사를 위해 지난해 두 부부(4명)를 고용했는데 한쌍은 결국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며 “이러다간 외국인근로자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인건비도 상승할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외국인근로자 공급 확대 시급=농촌 고령화에 따른 인력난이 갈수록 심각해짐에 따라 농업부문의 외국인근로자 공급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가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통해 농축산업분야에 배정한 외국인근로자 인원은 2013년 이후 6000명으로 묶여 농업인의 수요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인근로자 고용관리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농촌인력 부족 해소와 농산업 발전을 위해 농업분야 고용쿼터를 확대하면서 정부가 검토 중인 계절노동자(1개월·3개월 등 단기간에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안) 도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농가들은 특히 “예기치 않은 농장 이탈로 농업인들의 영농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외국인근로자가 처음 일을 하기 시작한 농장에서 적어도 1년은 의무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등 안정적 고용방안을 추가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