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쳇말로 상품 가격이 싸다는 의미를 표현할 때 ‘껌값’이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껌값’을 ‘쌀값’으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쌀 20㎏ 한포대를 5만원이라고 하면 1㎏에 2500원이다. 밥 한공기를 짓는 데 필요한 쌀 110g은 275원이 된다. 요즘 웬만한 껌 한통 값은 1000원 안팎이다. 하루 세끼 먹는 쌀값이 껌값보다 싼 시대를 살아가는 벼농가의 올해 가계부는 어떻게 기록돼 있을까.
충남 보령에서 3만7950㎡(1만1500평)규모의 벼농사를 짓는 전미농씨(68·가명). 자신의 소유는 6600㎡(2000평)이고 나머지 3만1350㎡(9500평)는 빌린 논이다. 볍씨 파종과 모내기·소독 등은 자신이 직접 하고 나머지 농작업은 이웃농가에 맡겼다.
농기계 사용료로 700만원이 들었다. 논 경운·정지와 벼 수확 등을 위해 임차한 트랙터·콤바인 비용이 560만원이었다. 또 이앙기 기름값 등 자신의 농기계 사용에 140만원을 잡았다.
비료·농약 등 농자재를 사는 비용으로 396만5000원을 사용했다. 정부 보급종인 <황금누리> <삼광> <새누리> 구입비와 볍씨 소독약 값이 58만5000원, 병해충 방제용 농약·제초제 값이 97만5000원이었다. 기비와 새끼·이삭거름 3번을 주는 데 240만5000원어치의 비료를 썼다.
벼 건조료는 40㎏당 평균 2000원씩 160만원을 지불했다. 또 논 임차료는 통상 2970㎡(900평)에 쌀 480㎏ 또는 벼 720㎏으로 매기는데 전씨의 경우 3만1350㎡ 해당액을 벼 7600㎏(약 855만원 상당)으로 줄 계획이다.
전씨는 올해 예년보다 10% 정도 늘어난 3만2000㎏의 벼를 생산했다. 전량 40㎏당 4만5000원에 농협에 넘겨 3600만원의 조수익을 얻었다.
전씨는 따라서 생산비 1256만5000원, 임차료 855만원을 뺀 1488만5000원에서 잡비·경비로 대략 88만5000원을 제외하면 1400만원 정도를 손에 쥔 셈이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벼농사로 한달에 117만원의 소득을 올린 것인데, 통계청의 올해 1·4분기 기준 전국가구(농어가 제외) 월평균 소득 451만7000원과 비교하면 고작 4분의 1(26%)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전씨는 앞으로 1㏊당 100만원의 고정직불금과 약간의 변동직불금을 받게 된다. 또 봄·가을 5개월 동안 산불감시원으로 활동하며 번 임금, 기초노령연금, 들깨 판매대금 등을 합치면 소득은 조금 더 늘어난다.
전씨는 돈 나올 구멍이 자꾸 줄어들어 앞날이 걱정이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난방비·전화비·차량유지비·경조사비 등 매달 꼬박꼬박 나가는 고정비가 적지 않다. 그런데 쌀값은 계속 떨어질 것 같고 내년에는 임차농지 8580㎡(2600평)도 돌려줘야 한다. 힘이 부쳐 다른 벌이를 찾기도 힘들다. 모아놓은 노후자금도 없다. 이게 큰일 아니면 뭐냐.”
보령=이승인 기자 silee@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