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쌀 등급표시 사항 중 ‘미검사’ 항목을 삭제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의 제도 개선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인 제약이 많아 시기상조라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연말 발표한 ‘중장기 쌀 수급안정대책’에 쌀 등급표시 사항 중 ‘미검사’ 항목을 삭제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현재 특·상·보통·등외·미검사로 돼 있는 표시사항을 특·상·보통·등외만 표시토록 하고 미검사 항목은 없애, 쌀 고품질화와 소비자 권익보호라는 쌀 등급표시제의 취지를 살리겠다는 의도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1년 정도 시행을 유예한 뒤 2017년 중에 ‘미검사’ 항목을 없앨 계획”이라면서 “다만 표시사항 위반으로 적발되면 과태료는 부과하되 벼 매입자금 지원 제외와 같은 제재는 받지 않도록 규정을 고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곡종합처리장(RPC) 운영주체들은 “전체 물량의 70% 이상이 ‘미검사’로 유통되는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며,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등급표시 비율은 미검사가 73.3%로 가장 많고, 특 9.9%, 상 9%, 보통 2.6%, 미표시 5.2% 등의 순이다.
충남의 한 RPC 대표는 “유통과정에서 싸라기 발생과 수분 증발로 품질에 변화가 생기면 자체 표시한 등급이 허위표시가 될 수 있어 ‘미검사’를 고수하는 것”이라면서 “당장 ‘미검사’ 항목을 없애면 RPC들의 피해가 속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양곡관리법’은 의무 표시사항인 쌀 등급표시를 위반하면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토록 명시하고 있다. 또 등급표시를 위반한 RPC들은 과태료 이외에 일정기간 벼 매입자금과 같은 정부 지원에서 배제되는 등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경남의 한 RPC 대표는 “RPC 품질분석기에 대한 자체 검정기관이 없어 현장의 불신이 크고, 농관원의 사후검사가 육안검사에 의존해 RPC 품질분석기와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며 “현실적인 걸림돌이 너무 많은 만큼, 당분간 ‘미검사’ 항목이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중소 RPC 관계자는 “품질분석기를 설치하는데 적게는 5000만~6000만원, 많게는 2억~3억원이 들어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 RPC들에겐 너무 큰 부담”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임병희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미검사’ 삭제는 고품질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RPC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최대한 둬야 하고, RPC에 대한 정부의 시설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장기 쌀 수급안정대책’에 다수확 품종 비율 축소가 포함된 것도 논란거리다. 농식품부는 고품질화를 위해 다수확 품종의 공공비축 매입을 줄이고, 정부 보급종 가운데 다수확 품종 비율을 2015년 42%에서 2018년 38% 이하로 축소한다는 방침이다.
한 육종 전문가는 “<호품>은 다수확 품종이면서 밥맛도 좋아 농가들이 선호하는데, 일부 농가들이 수확량을 좀 더 늘리기 위해 비료를 과다하게 살포해 미질 저하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면서 “다수확 품종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축소할 것이 아니라, 질소비료 과다 사용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우균 기자 wknam@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