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유기농포도단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전북 정읍시 감곡면 첨단마을 시설포도 재배단지 일대. 23~24일 30㎝가 넘는 폭설이 내린 첨단마을에선 두꺼운 눈을 뒤집어쓴 채 엿가락처럼 휘어져 무너져내린 시설하우스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번 폭설로 첨단마을 30농가 중 3농가의 시설하우스 30여동이 완전히 붕괴됐다.
특히 40㎝ 이상 눈이 내린 감곡지역은 어른 무릎까지 눈이 쌓이면서 피해가 컸다. 8264㎡(2500평)의 연동하우스 피해를 입은 차성민씨(41·감곡면 오주리)는 “2005년 폭설에도 우리 마을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폭삭 주저앉아 버렸다”며 “하우스를 복구한다고 해도 올해 농사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한숨 지었다.
“시설원예 농사 22년 만에 눈으로 하우스가 쓰러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김재천씨(52·충남 예산군 신암면)는 24일 아침 밤새 내린 눈으로 하우스 한동이 주저앉은 것을 보고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옆 하우스도 파이프가 뒤로 밀려 철거해야 할 상황이다.
폭이 8m여서 32㎜ 파이프로 튼튼하게 지은 이중하우스였는데 눈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쪽파를 재배 중인 옆 하우스는 가온을 해줘 눈이 녹아내렸지만 피해 하우스는 작물을 재배하지 않았다.
김씨는 “3월20일경 <흑미>수박 재배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 중이었는데 이런 날벼락을 맞았다”며 “눈이 녹은 뒤 철거작업을 하려면 2월 말경이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돼 수박을 재배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23~25일에 내린 폭설로 신암지역은 6농가의 하우스 21동이 피해를 입었다.
◆최악 폭설, 피해 속출=최악의 폭설과 한파가 이어지면서 농업분야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23~25일 전북 부안(줄포) 39.5㎝, 정읍 36.5㎝, 충남 서천 35㎝, 전북 고창 30㎝, 전남 무안(해제) 27㎝, 제주 25㎝ 등 충남과 전남·북, 제주를 중심으로 폭설이 내렸다. 이 기간 서울 등 중북부지역에는 영하 15℃를 넘나드는 한파가 몰아쳐 전국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폭설과 강추위로 인한 피해는 시설하우스와 축산농가에 집중됐다.
전남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장성군 남면·북하면·황룡면에 걸쳐 비닐하우스 11개 동 6925㎡(2100평)가량이 무너졌다. 다행히 작물을 재배하지 않아 시설물 외 피해는 없었다고 대책본부는 전했다. 영광의 1개 동 1980㎡(600평)의 토마토 하우스에서는 비닐이 파손돼 작물 동해 피해가 나기도 했다. 또 화순·영광·함평에서는 축사 3개 동 약 860㎡(260평)가 폭설로 무너지거나 붕괴 위험에 처해 동물 70여마리를 대피시켰다.
23~24일 12㎝의 폭설과 영하 6℃ 안팎의 강추위가 찾아온 제주는 모든 항공 및 배편이 끊겨 고립된 섬으로 바뀌며 관광객과 주민의 발길이 묶이는 한편 농축산물의 도외 반출과 반입이 끊겼다.
제주도 재난안전대책본부와 농협 등에 따르면 특히 25일 현재 폭설과 강풍으로 제주시 해안동 블루베리 비닐하우스 5동(1320㎡·400평)과 서귀포시 남원읍 블루베리 비닐하우스 4동(1200㎡·370평), 표선면 세화리 한라봉 비닐하우스 1동(226㎡·70평)과 세화리·표선리 금감 비닐하우스 4동(758㎡·230평) 등 비닐하우스 3504㎡(약 1060평)가 전파돼 3400만원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계속된 폭설로 제주 전 지역의 도로가 결빙돼 하우스 등으로 접근이 어려운 상태여서 피해조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조사가 본격화되면 피해규모가 더 늘어날 수 있으며, 노지 월동무 등 밭작물의 경우도 동해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전북 군산과 부안에서는 축사 지붕이 무너져내렸다. 정읍·고창·순창 등지에서는 비닐하우스 14동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려앉았다.
◆온정·복구 손길 이어져=32년 만의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로 50시간이 넘게 운항이 중단된 제주공항에서는 강덕재 제주농협지역본부장과 김대현 제주농협노조위원장을 비롯한 50여명의 직원들이 피로에 지친 관광객들에게 감귤과 우유를 긴급 지원해 호평을 들었다.
이들은 25일 제주공항을 찾아 감귤 200상자(10㎏들이)와 제주축협(조합장 고성남)이 제공한 우유 2000개를 관광객들에게 나눠줬다.
강덕재 본부장은 “사상 유례없는 한파와 폭설로 제주공항이 이틀째 폐쇄되면서 불편이 많을 것”이라며 “제주농협의 정성을 담은 제주 감귤 등으로 불편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남경찰은 25일 폭설로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담양 대덕면 소재 포도재배 비닐하우스 농가 등 5곳에 경찰 2개 중대를 배치해 비닐하우스 제설작업 등 대민지원에 나서 귀감이 됐다.
피해 농가들은 “이번 폭설로 비닐하우스가 붕괴될 위험에 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경찰관들이 발 벗고 나서줘 고맙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예산=이승인 기자, 정읍·고창=김윤석 기자, 장성·무안=박창희 기자·장세원 객원기자, 제주=장수옥 기자, 성홍기 기자 silee@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