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간한 ‘한·미 FTA 발효 4년, 농업부문 영향과 과제’ 보고서를 보면 2015년 미국산 분유 수입량은 5699t으로 FTA 발효 전 5년(2007~2011년) 평년값인 289t에 비해 1872% 폭증했다. 치즈 수입량은 같은 기간 1만2901t에서 5만4821t으로 325% 늘었다.
이는 한·미 FTA 발효를 앞두고 큰 피해가 우려됐던 쇠고기(22.8%)·돼지고기(102.4%)나 예상치 못한 피해 품목의 대표격인 체리(300.5%)의 수입 증가율을 뛰어넘는 수치다.
이 같은 유제품 수입량 급증의 일차적인 원인은 정부가 FTA를 체결하며 미국에 내준 무관세 쿼터에 있다. 무관세 쿼터는 정부가 허용한 일정한 물량에 대해서는 무관세(0%) 혜택을 주는 제도로 대부분 품목의 쿼터는 매년 3%씩 복리로 증량된다. 미국산 분유의 쿼터는 FTA 발효 1년차인 2012년 5000t에서 시작해 지난해엔 5464t으로 늘었다. 전체 수입 물량의 대부분(96%)이 무관세로 국내 땅을 밟는 셈이다<그래프 참조>.
게다가 치즈 등 상당수 품목은 쿼터 외 물량에 부과되는 관세율마저 차츰 낮아지다 사라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예컨대 미국산 치즈는 쿼터를 초과한 물량에 적용되는 관세율이 2012년 33.6%에서 지난해 26.4%로 낮아졌고, 세부 품목별로 향후 6~11년 내에는 관세가 완전히 사라진다. 또한 현재 7649t인 무관세 쿼터는 앞으로 무한히 늘어나게 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런 사정이 한·미 FTA만의 얘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유럽연합(EU), 한·뉴질랜드, 한·호주 FTA 협정에서도 대부분 유제품의 관세 구조는 비슷한 방식으로 설계됐다. 각 FTA 체결국별로 짧게는 7년에서 길게는 20년 안에 치즈·분유(조제+혼합)·버터의 관세가 철폐되고 무관세 쿼터는 매년 2~3%씩 늘어난다.
이에 따라 국내 시장 피해도 가시화되면서 규모가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국내 우유 소비가 줄면서 재고 처리에 골머리를 썩는 상황에서 FTA 누적 영향도 쌓이다 보니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것.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분유 재고량은 2만t가량으로 사상 최대 수준이다.
이승호 한국낙농육우협회장은 “앞으로 FTA 연차가 쌓일수록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계속해 저가의 유제품이 더 많이 들어올 것이고, 국내 낙농기반 붕괴는 시간 문제”라면서 “낙농 특성을 반영한 FTA 피해보전직불제 개선과 제도적인 우유소비 확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지성태 농경연 부연구위원은 “FTA 이행에 따른 국내 농축산업 생산구조 변화 가능성에 대비해 실효성 있는 FTA 국내 보완대책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써야 한다”며 “특히 직접적인 수입 피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상일 기자 csi18@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