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 유통업체는 물론 도매시장까지 위축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온라인·모바일 시장에서 조차도 농산물 판매 감소세가 뚜렷해 심각성을 더한다. 전반적인 경기침체에 따른 영향으로 돌리며 치부하긴 국내 농산물시장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게 유통업계의 진단이다. 경기 활성화와 농가소득 제고를 위해 농산물 소비촉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판매부진 허덕이는 국산 농산물=5월 창사 21주년을 맞은 농협유통. 이를 기념해 4월28일부터 5월22일까지 24개 계통 사무소를 총동원해 자동차 3대와 역대 최고 수준의 경품을 내걸고 대대적인 국산 농산물 판촉전을 단행했다. 일부 농산물은 최대 50% 할인된 파격적인 값을 내걸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만큼 신통치 않았다. 특판행사 집계결과 매출은 지난 동기보다 오히려 7.5% 감소했으며, 매장을 찾은 고객 수도 5.6%나 줄었다.
농협유통 관계자는 “농산물 소비가 워낙 부진해 판매확대를 위해 창사 기념일을 맞아 전사적인 판촉전을 열었지만 역부족이었다”며 “체감경기가 나빠서인지 소비여력이 있는 고객조차도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고 씀씀이를 줄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같은 농산물 판매부진은 농협유통뿐만 아니라 다른 대형 마트나 온라인·모바일 시장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 대형 마트 관계자는 “올 5월까지만 보면 전체 농산물 매출이 5%가량 늘었다”며 “하지만 이는 외국산 과일 판매량이 뒷받침됐기 때문이지 국산 농산물 판매가 는 것은 아니었으며, 특히 국산 열매채소류 판매부진은 심각했다”고 밝혔다.
온라인·모바일 시장에서도 농축수산물 판매액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통계청 온라인쇼핑 동향을 보면 1월 1713억원을 기록했던 월간 농축수산물 온라인 거래액이 4월에는 1223억원으로 29%나 급감했다.
모바일 거래액도 887억원에서 718억원으로 19% 줄었다. 전년에 비해 온라인·모바일 시장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올 들어 농축수산물 거래액은 매월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국산 농산물 판매가 위축되고 있는 것은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부진과 함께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수입 농산물 공세가 더욱 거세졌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 4월까지 주요 신선과일 수입량은 33만3000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 늘었다. 특히 오렌지는 4월까지 13만1800t이 수입돼 지난해 전체 수입량(11만1700t)을 넘어섰다. 체리도 같은 기간 827t이 반입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 늘었다.
수입량 증가와 함께 수입과일 가격은 평년보다 더 떨어져 국산 열매채소류 시장을 흔들어놓고 있다. 6월1~7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거래된 오렌지 18㎏들이 1상자 가격은 평년의 77%인 3만4065원이었으며, 외국산 포도 8㎏들이 1상자는 평년의 76% 수준인 2만3794원이었다.
◆국산 농산물가격 된서리=소비지에서의 국산 농산물 판매부진은 가격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외국산 과일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국산 열매채소류의 타격이 심각하다.
서울 가락시장에서 1~7일 거래된 토마토 5㎏들이 1상자는 상품가격 기준으로 평균 5322원에 거래됐다. 평년에 비해 60% 낮은 값으로 5월부터 계속 저조한 시세를 이어가고 있다. 참외 10㎏들이 1상자는 평균 2만9416원에 거래됐다. 최근 더워진 날씨로 매기가 약간 살아났다고 하지만 지난해 가격의 76%, 평년 가격의 81% 수준에 불과하다.
출하 초기인 매실과 포도·블루베리 등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매실은 소비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모습이다. 매실 10㎏들이 1상자는 2만1107원에 거래됐다. 평년의 60% 수준이다. 매실 수확을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했던 지난해 가격보다도 3450원 낮다. 포도 <델라웨어> 2㎏들이 1상자는 1만7274원에 거래됐다. 평년의 90% 수준이다.
박영욱 중앙청과 경매사는 “소비가 워낙 부진해 올해 시세가 잘 나오는 과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면서 “유통업체에서 판촉행사를 하는 주말에만 살짝 활기를 띨 뿐, 평일엔 발주 물량이 적어 매기가 부진하다”고 말했다.
송충호 농협가락공판장 부장은 “메르스 등 이슈가 있었던 작년과 재작년보다도 더 소비가 침체된 것으로 보여진다”면서 “특히 식사 후에 찾는 과일류의 경우 채소류보다 경기침체에 따른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상황이 더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형, 중소형 가릴 것 없이 유통업체들이 납품단가를 낮추고 있어 중도매인들이 많은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락시장 중도매인인 김이열 온누리후르츠 사장은 “농산물 시세는 낮지만 유통업체에서 발주량을 줄이고 있어 재고가 많이 쌓인다”면서 “구매한 물량을 다 못 팔고 반 이상 남기는 경우가 허다해 다음날 새로 물량을 사들이기가 겁나고, 이에 따라 매기가 부족해 다시 시세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유통업계 전문가는 “국가 전체적인 경기위축에 따라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고 있고, 특히 국산 농산물 수요를 외국산이 대체하면서 더욱 안 좋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외국산 과일과 같이 편리하게 섭취 가능한 가공식품 개발이나 자조금 등을 통한 대대적인 소비촉진책 마련 등 정부와 생산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농산물 소비촉진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성홍기·장재혁·이현진 기자 hgsung@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