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영동의 복숭아농가 김찬규씨가 멧돼지떼가 새벽에 내려와 덜 여문 알만 쏙 빼먹고 버린 빈 복숭아봉지를 들어보이고 있다(위). 멧돼지 피해로 꺾인 복숭아 가지와 버려진 봉지들(아래).
“그동안 콩과 깻잎에만 피해를 줬지, 과수까지 손댈지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충북 영동군 영동읍 산이리의 김찬규씨(45)는 최근 멧돼지 습격을 받은 복숭아밭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복숭아밭은 마치 태풍을 만난 것처럼 나무 밑기둥 주변마다 빈 복숭아봉지가 수북했는가 하면 일부 나무는 잔가지가 부러졌고 땅이 파헤쳐진 곳도 있었다.
김씨는 “새벽 3~4시가 되면 떼로 몰려들어 나무 아래쪽에 달린 작은 과일을 쏙 빼먹고 달아났다가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고 있다”면서 “과원 한가운데 큰 개까지 갖다 놓았지만, 멧돼지의 덩치가 워낙 크고 떼로 다니면서 과수원을 습격하는 탓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강원 평창군 평창읍에서 양상추·옥수수 등 복합영농을 하는 황선자씨(57·지동리)도 야생동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황씨는 “밭 주변에 그물망을 치는 등 단속을 했는데도 고라니가 어디로 들어왔는지 양상추를 다 뽑아버려 그 빈자리에 열번도 더 넘게 모종을 다시 심었다”면서 “상황이 이렇다 보니 크기가 들쭉날쭉해 상품성이 떨어져 당초 계약금의 반값도 못 받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황씨는 수확시기가 다가오는 옥수수도 걱정이다. “지난해도 옥수수밭의 40%를 야생동물의 먹이로 내줬다”는 그는 “올해엔 그물망을 치고 산짐승이 싫어하는 냄새나는 약을 걸어놓고 밭 주변에 뿌려도 보고 있는데, 얼마나 피해를 막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전남 화순군 북면에서 고구마를 키우는 나종주씨(69) 역시 요즘 바짝 긴장하고 있다. 연례행사처럼 멧돼지가 고구마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을까봐서다. 그는 해마다 1000㎡(300여평)의 밭 가운데서 3분의 2가량 피해를 입고 있다. 나씨는 “지난해에는 고구마 농사를 완전히 망쳐 화순군으로부터 15만원의 피해보상금을 받았다”면서 “농사 규모가 작다 보니 밭 주변을 폐현수막 등으로 둘러싸긴 했는데 멧돼지 접근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푸념했다.
경북 성주에서는 야생오리떼가 양파 뒷그루로 갓 모내기를 마친 논을 망친 피해도 있었다. 월항면 안포리의 박일수씨(62)는 “이앙한 지 1주일도 안 돼 100마리가 넘는 야생오리 떼가 몰려와 온통 논바닥을 헤집고 다녀 뿌리를 내리지 못한 모가 뽑히는 피해가 발생했다”면서 “번식이 잘돼 개체수가 급증하는 야생오리도 멧돼지처럼 포획 대상 유해조수에 포함시켜달라”고 하소연했다.
영동=류호천, 평창=김명신, 화순=오영채, 성주=김용덕 기자 fortune@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