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쌀산업이 ‘수급 불균형’이란 벽에 갇힌 채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3년 연속 풍년으로 공급이 급격히 늘었지만, 소비는 뚝 떨어지면서 정부와 농협 모두 재고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또다시 풍년이 들면 쌀산업 기반은 급격히 흔들릴 것으로 우려된다.
11일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에 따르면 정부양곡창고에는 6월 말 기준 쌀 175만t이 쌓여 있다. 우리 국민의 6개월치 식용 소비량과 맞먹는 양이다. 농협 재고는 7월 말 현재 33만7000t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의 27만2000t에 견줘 6만5000t(24%) 더 많다. 재고가 워낙 많다 보니 출혈경쟁도 심각하다. 최근 수도권 할인매장에는 20㎏에 3만7000원 하는 경기지역 유명 브랜드쌀이 등장했다. 평소에는 6만원대에 팔리던 쌀이다.
쌀 수급 불균형이 심각한 원인은 소비 감소가 생산량 감소를 앞질렀기 때문이다. 최근 5년 동안 벼 재배면적은 연평균 2.1%씩 줄어든 데 반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2.7%씩 감소했다. 게다가 다수확 품종 보급으로 10a(300평)당 평균 수확량은 5년 새 483㎏에서 542㎏으로 뛰었다. 국민들은 쌀을 덜 먹는데 공급은 오히려 늘어난 셈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10년간 연평균 36만t의 쌀이 초과 공급됐다고 분석했다. 쌀 문제가 근래에 갑자기 불거진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정부는 수급 문제를 시장에 맡겨 놓으면 ‘공급 과잉→쌀값 하락→소득 감소분을 메우기 위한 단위면적당 생산량 증가’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를 해결할 뚜렷한 해법을 아직까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수확기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5일자 산지 쌀값은 14만1896원(80㎏ 기준)으로 지난해 수확기(10~12월)에 견줘 6.7% 떨어졌다. 최근 5년 중 최저치다. 8~9월 쌀값이 햇벼 가격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대로 가면 올 수확기에 전국 농촌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여기에 3년 연속 대규모 적자를 본 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이 햇벼 매입을 주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장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자칫 적자 폭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충남지역에서 시행했던 사후정산제를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RPC가 수확기에 선도금으로 벼를 매입한 뒤 생산량이 확정되는 12월 중순 이후 매입가격을 결정하고 차액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문병완 농협 RPC운영 전국협의회장(전남 보성농협 조합장)은 “정부 수매제 폐지 이후 RPC가 정부 역할을 상당 부분 대신하고 있는데, 적자 때문에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라면서 “정부는 적절한 계절진폭이 발생하도록 확실한 수확기 대책을 마련하고, 농협은 사후정산제를 정착해 가격 리스크(위험)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영 기자 supply@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