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선녀벌레의 극성에 못 이겨 친환경인증을 포기한 장석원씨가 자신의 농장에서 블루베리나무를 살펴보며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다.
장씨는 “선녀벌레가 작년엔 블루베리 나무에 조금씩 붙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올해는 농장 전체를 뒤덮을 만큼 심각하다”며 “온갖 방법을 다 써봐도 소용없어 인증을 포기하고 관행농법으로 농사를 짓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미국선녀벌레는 농약을 살포해도 사라지지 않고 장씨를 계속 괴롭히고 있다. 선녀벌레는 농약으로 방제를 해도 죽지 않고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가 3~4일만 지나면 다시 농장으로 몰려들어 블루베리나무 줄기에 더덕더덕 붙는다.
때문에 장씨는 농업과 산림 관련 기관에 수차례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직 뾰족한 답을 듣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그는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아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을 냈지만 어느 기관에서도 책임을 지지 않고 떠넘겨, 결국 돌아온 답은 면사무소 소독담당이 전화를 해 소독을 해주면 어떻겠느냐는 것뿐이었다”며 가슴을 쳤다.
밤 재배농가 황인택씨(71·공주시 이인면 달산리)도 미국선녀벌레 때문에 친환경인증을 포기할 생각이다. 19만8000㎡(6만평) 규모의 야산을 일궈 밤나무 5000그루를 식재한 황씨 역시 친환경인증을 받아 양질의 밤을 생산해왔는데, 3년 전부터 시작된 미국선녀벌레의 습격에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어졌다.
황씨는 “산림 관련 정부기관과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도 아직 국내에서 미국선녀벌레에 대해 연구한 자료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며 “선녀벌레로 농가 피해가 막심해 재앙이 닥칠 텐데 정부의 대처방식이 너무 안이하다”고 답답해했다.
올해 들어 충남지역에 미국선녀벌레가 기승을 부려 농민들이 속을 태우고 있다. 본지 취재 결과 미국선녀벌레는 배·사과·감·대추·헛개·블루베리나무 등 유실수를 비롯해 고추·콩 등 대부분의 밭작물에도 피해를 주고 있다. 수액과 과즙을 빨아먹고 자라는 이 벌레는 나뭇가지를 길게 갉아내 심층부에 알을 낳은 후 왁스 같은 물질을 도포해 농약을 뿌려도 알은 멀쩡하다. 미국선녀벌레가 한번 앉았던 과수와 농작물은 그만큼 수확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공주지역의 한 농민은 “정부가 제시하는 방제법이 별 효과가 없고, 시판 중인 농약으로는 미국선녀벌레를 잡을 수 없어 사용이 금지된 불법 밀수농약을 사용하기도 한다”면서 “벌써 몇년 전부터 농가들이 피해 대책을 요구했는데, 아직도 효과적인 방제법이 나오지 않은 것은 큰 문제”라고 대책을 촉구했다.
아산·공주=김광동 기자 kimgd@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