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28일)이 다가오면서 농축산업계의 피해가 가시화되고 있다. 연중 설과 더불어 최대 성수기인 추석대목을 맞았음에도 농축산물 경기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우 피해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매년 추석을 앞두고 상승했던 한우 가격은 도축마릿수가 줄어드는 데도 오르기는커녕 떨어지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관련 전문가는 “김영란법 여파로 소비가 위축되다 보니 한우 물량이 줄어도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추석 D-3주(8월22~26일)의 한우 도축마릿수는 4118마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나 줄었다. 그럼에도 같은 기간 지육 도매가격은 1㎏당 평균 1만8437원에서 1만8181원으로 1.4% 떨어졌다.
추석용 한우 선물세트 시장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농협에 따르면 추석 D-16일 전 5일간(8월25~29일) 전국 350여개 농·축협 하나로마트의 한우 선물세트 판매금액은 3억4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6억원)보다 50%가량 감소한 것이다.
산지 축협 하나로마트 관계자는 “기존 제품 그대로 용량을 줄이거나 가성비를 중시한 불고기와 국거리로 만든 중저가 제품만 팔린다”면서 “게다가 선물세트 크기를 줄이다 보니 포장비와 인건비 부담만 더 늘었다”고 푸념했다.
농협 안심축산사업부 관계자도 “지난해에는 추석 20일 전까지 대량 구매문의가 끊이지 않았는데, 올해는 구매문의 전화조차 없다”고 말했다.
육가공제품과 벌꿀 선물세트 시장 풍경도 바꿔놓고 있다. 육가공제품은 3만원 이하가 대부분이고, 벌꿀 선물세트 역시 5만원 이하의 중저가 제품이 주로 판매되고 있는 것.
농산물도 타격을 입고 있다. 유통업계는 발빠르게 김영란법 기준에 맞춰 5만원 이하의 제품을 앞다퉈 내놓았지만 기업 등의 구매문의가 ‘뚝’ 끊겼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실제로 판매부진은 유통업체의 추석 사전예약 판매 결과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석 3주 전 농협유통 하나로마트 서울 양재점의 과일 선물세트 사전 판매실적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9%나 줄었다. 백화점이나 다른 대형 마트 역시 청과류 선물세트 예약판매가 20% 안팎으로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예약 품목도 대부분 5만원 이하 품목에 한정돼 있다. 8월25일 기준 농협유통 서울 양재점의 농산물을 포함한 선물세트 판매현황 분석 결과 5만원 이하 상품 비중은 79%였다. 이는 지난해와 견줘 30%포인트나 증가한 것으로, 5만원 초과 상품비중은 전년 50.7%에서 올해 21%로 급감했다.
대형 유통업체 한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관공서나 기업 등이 벌써부터 눈치보기에 들어가 선물세트 구입문의가 예년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며 “관련법이 본격 시행되면 농축산물을 생산하는 농민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억·성홍기 기자 eok1128@nongmin.com